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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9단 조한승 5단 이세돌 3단 왕위전 도전권 안개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유서깊은 왕위전은 그 이름 때문인지 해마다 홍역을 치른다. 올해도 예외없이 막판에 대혼전이 벌어졌고 싸움터의 먼지는 걷혔으나 승자는 가려지지 않았다. 조훈현(49)9단·조한승(20)5단·이세돌(19)3단 등 세명이 5승2패 동률을 이뤄 재대결을 벌이게 된 것이다. 특히 이세돌은 3년 연속 재대결에 나서고 있는데 이는 바둑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초반전은 조한승5단이 주도했다. 지난해 다승왕 조5단은 프로 동기생인 이세돌3단을 격파하는 등 파죽의 기세로 3연승을 거뒀다. 이세돌은 이미 2패를 당해 도전권에서 멀어졌고 경쟁자 조훈현도 윤현석6단에게 일격을 당한 터였다. 이제 조훈현이란 벽만 넘으면 거칠게 없어보였다.

하지만 신예기사들에게 누구보다 강해 '훈련교관'으로 불리는 조9단은 이번에도 조한승을 가볍게 꺾어버렸고 기세가 꺾인 조한승은 목진석6단에게도 져 2패로 주저앉았다.

중반전은 조훈현9단과 서봉수9단의 한판승부로 흘러갔다. 그들 두사람만이 '1패'로 버티고 있었기에 올해는 오랜만에 조-서 대결로 도전권이 가려지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복병이 한사람 숨어 있었다. 최근 다시 상승세를 타며 사방에서 승전보를 전해오는 이세돌3단이었다. 그는 6월, 월드컵 축구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조훈현9단과 서봉수9단에게 소리없이 1패씩을 안겨줬다. 조9단과 서9단도 4승2패로 밀려버린 것이다.

지난 1일 본선 마지막 대국인 조-서 대결이 열렸다. 이미 5승2패를 거둔 조한승과 이세돌이 나머지 한사람의 동률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자는 조훈현9단. 그는 박진감 넘치는 대세력 작전으로 백을 쥐고 불계승을 거둬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막판 재대결 토너먼트에 턱걸이했다.

2일 추첨을 했다. 조9단이 행운의 부전승을 뽑아 조한승5단과 이세돌3단이 8일 먼저 대결하게 됐다. 그 승자가 10일 조9단과 도전권을 건 마지막 대국을 갖게 된다. 그리고 12일엔 왕위 이창호9단과의 도전기가 시작된다.

숨가쁜 일정이다.재미있는 것은 지난해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지난해는 조훈현9단·안영길4단·이세돌3단 3명이 동률이 됐고 조9단이 부전승을 뽑았다. 조9단은 안4단이 껄끄러운 이세돌을 꺾어주는 데 힘입어 비교적 쉽게 도전권을 잡았다(조9단은 이세돌3단에게 5승6패. 그러나 처음 5연승 뒤 1999년 이후 6연패를 기록 중이다. 이세돌이야말로 조9단의 천적인 셈이다).

올해는 어찌될까. 조9단이 또다시 행운을 잡을 수 있을까. 지난해엔 재대결의 힘겨운 일정에 지친 조9단이 몸살에 걸려 도전기 첫판을 기권했고 3국에선 49수만에 돌을 던져 도전기 사상 최단명국을 만들어내는등 파란과 사건이 연속 벌어졌다.

3년 연속 재대결에 나서는 이세돌 역시 주목의 대상이다. 그는 2000년에 서봉수9단과의 재대결에서 패배했고 지난해에도 재대결에서 졌다. 올해의 상대자 조한승5단은 2000년에 이세돌의 연승행진을 32연승에서 마감시키는 등 이세돌에게 강한 면모를 보여왔기에 결과가 더욱 궁금해진다.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삼성카드가 후원하는 왕위전은 올해로 36년째. 도전기는 12일 서울에서 펼쳐진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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