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터지+日전통문화 =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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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지난달 국내 개봉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 국민의 20%인 2천4백여만명이 관람한 대히트작이다(국내 최고 기록인 '친구'는 8백18만명이다). 이유가 뭘까. 기본적으로 일본 전통문화에 기초해 남녀노소에게 고루 어필할 수 있었던 데다 지금까지 미야자키 작품 속에 나왔던 주인공들의 이미지가 어떤 형태로든 재현된, 그의 결정판이었기에 가능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97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2000년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창작한다』 라는 책을 낸 미야자키 전문가 황의웅(31)씨는 최근 펴낸 『황의웅의 세계명작극장-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튜디오 본프리·1만3천원)에서 이 작품의 히트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황씨는 우선 이 작품이 팬터지 동화의 고전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기본 맥을 같이한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공통점으로 두 작품 모두 소녀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만든 작품이며, 현실에서 환상의 세계를 들어가는 것이 어두운 통로를 이용한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돼지로 변한 공작부인의 아들과 개구리 시종, 하트의 여왕 등을 오마주(존경하는 의미에서 본뜸)한 것이 이 작품이라고 지적했다.

다양한 일본의 전통문화를 섬세하게 표현한 것도 이 작품의 강점이다. 배경을 온천장으로 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어릴 때부터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장소가 아닌, 뭔가 신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곳이라고 느꼈다"라는 미야자키 감독의 말을 빌려 황씨는 목욕을 자주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상 목욕탕은 친근하면서도 여러 가지 사연이 있는 휴식공간이라는 점이 많은 사람에게 먹혀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서로 먹고 싶어하는 값진 음식인 말린 영원(도롱뇽의 일종)은 실제로 일본에서 정력제로 알려진 민간식품이라는 것.

전작 캐릭터의 이미지에 기초한 다양한 캐릭터와 주요 장면 역시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 황씨는 "미야자키의 작품은 동화적 팬터지에 기초해 일본의 현실을 은유하며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감성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라고 말했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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