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 역풍에 한발 뺀 盧 : 韓-獨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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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둘러싼 민주당 내 소요가 확산과 미봉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28일엔 '조용한 해결'이라는 명분의 미봉 쪽이다.

한화갑(韓和甲)대표가 金대통령에게 김홍일(金弘一)의원 탈당 및 박지원(朴智元)비서실장 퇴진 문제 등 당내 각 계파의 요구 사항들을 일괄 건의하는 형식이다.

과거 청산 문제의 공론화에 부담을 느껴 온 韓대표가 평소 주장하던 해법이기도 하다.

과거 청산의 주역도 '노무현(盧武鉉)대통령후보+쇄신파'에서 韓대표로 바뀌는 양상이다.

불안정한 상태로나마 봉합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이날 盧후보와 韓대표의 정례 조찬 회동에서다. 盧후보는 韓대표의 '조용한 해결' 방식에 동의했다. 일종의 후퇴다.

그는 26일 시민단체와의 간담회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렸음을 강조하며 "나는 결단에 있어 다른 사람보다 우유부단하지 않다" "더 이상 어물어물 핑계만 대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고 했었다.

盧후보가 한발 물러난 것은 의외로 거센 범동교동계의 저항에 따른 역풍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범동교동계는 쇄신파가 공개적·전면적으로 청와대를 몰아붙이자 연청·중도개혁포럼 등을 앞세워 盧후보와 쇄신파를 비난했다.

양측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고 당내에선 金의원 거취 문제 등을 놓고 쇄신파와 동교동계의 충돌이 확산될 경우 정계개편의 도화선이 되거나 자칫 당이 쪼개지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날 盧후보는 韓대표와의 조찬 후 기자 간담회를 자청, '정치적 결단'의 내용을 스스로 상당 부분 희석했다.

그는 "(내가 DJ와의)과거사에 대해 어떤 결단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언론이)추론하는 것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결단에 대해 준비한 것은 없다"고 했다.

한 라디오 인터뷰에선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청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발을 뺐다.

이제 공은 韓대표에게 넘어갔다. 韓대표는 다음달 초 金대통령의 방일(訪日) 이후 가시적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청와대와 민주당 주변에선 개각이나 아태재단 정리 등엔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金의원의 거취 문제는 외유(外遊)로 푸는 방안 등이 차선책으로 나온다.

하지만 朴실장 퇴진 문제 등은 절충이 쉽지 않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盧후보는 다시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

盧후보는 기자 간담회에서 자신의 발언을 후퇴시키면서도 "차별화와 별개로 정국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청와대라도)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요구할 일이 있으면 요구하겠다"고 재공세의 여지를 남겼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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