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거리응원:감동을 나누는 길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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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길은 화살표처럼 방향성을 지닌다. 도중에서 멈추거나 한자리를 맴돌 때는 이미 그것은 길의 죽음을 의미한다. 단지 통과해야 한다는 길거리의 그 코드 속에서는 누구나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 강박관념 때문에 단 일분이라도 신호에 걸리거나 길이 막혀 정체했을 때는 한 시간처럼 길게 느낀다.

길은 소유할 수 없다. 방 안에서처럼 길거리에 앉아있거나 서성거리다가는 걸인과 불량배로 보이게 된다. 길 위에 서 있는 여자를 밤의 여인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길 위에 모여있으면 시위대가 아닌가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본다.

그러나 방향성·통과성, 그리고 낯선 사람들이 스쳐가는 타자성의 길거리 코드는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으로 무너진다. 차가운 거리에 뜨거운 온도가 생기고 통과의 기호(記號)는 멈춤과 모임의 광장의 기호로 바뀐다. 우리는 광화문 거리가, 시청 앞마당이 삽시간에 아고라(광장)로 둔갑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운 앞가슴 같은 아고라의 광경을 방불케 한다. 희랍어의 오전은 "아고라에 모인다"에서, 그리고 오후는 "아고라에서 흩어진다"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정말 우리는 오전에 하나 둘씩 모여들다가 오후에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붉은 악마들의 광장 문화를 보았다.

머리에는 태극기 두건을 두르고 팔에는 응원용 머플러, 가방에는 꽃종이 다발과 음료수를 넣은 가방, 그리고 대표팀 붉은 유니폼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길거리 응원단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바삐 바삐 스쳐 지나가던 그 거리의 통행자들이 아니다. 동시에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 떠도는 시장의 상인들과 고객도 아니다. 그들은 감동을 함께 숨쉬고 기쁨과 즐거움을 손뼉과 함성으로 나누는 광장의 아이들인 것이다.

원래 한국의 문화코드에는 광장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청 앞 광장은 이름만 광장일 뿐 차들이 돌아가는 로터리요, 광고탑을 세우는 빈터일 뿐이다. 한국인에게 광장의 문화 코드가 없었다는 것은 여의도의 유일한 광장을 공원으로 바꿔 버린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광장을 공원으로 바꾸는 것은 장독대를 부숴 부뚜막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인데도 별로 이상해 하는 시민들이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인의 광장체험을 대신해 온 것은 골목 체험이다. 길이 막힌 곳에 막다른 골목이 생겨난다.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아이들의 작은 광장이다. 아이들은 골목에 모여 함께 놀고 함께 즐거움을 나눈다. 골목대장은 학교 선생이나 부모가 뽑아준 것이 아니다.골목길은 방향성·통과성·타인성 같은 길의 특성들이 약화되거나 탈 코드화한다. 그래서 멈추고 모이고 나누고 함께 숨쉬는 작은 광장 코드로 변한다. 다만 딱하게도 끼리들만이 모이는 폐쇄적인 골목문화에는 확장성과 개방성이란 것이 없다. 그 때문에 골목은 진정한 공동체라고 하기보다 '똘마니'가 아니면 뒷골목의 어두운 폭력배의 조직으로 기운다.

한마디로 이 골목체험을 열린 코드로 바꾼 것이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문화다. 답답한 골목길을 온라인의 클릭(click)으로 바꿔놓은 것이 붉은 악마를 탄생시킨 사이버 공간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오프라인의 브릭(brick)으로 확장시킨 것이 5백만명을 모여들게 한 전국 각지의 광장들-정확하게 말하자면 길거리를 탈(脫)코드화한 멈춤의 거리공간이다.

그러기에 광화문 거리는 멍석을 펴놓은 광장과 다르다. 하던 짓도 멍석을 펴면 안한다는 한국인의 독특한 행동원리가 창안한 현대 버전의 길놀이요 축제마당이다. 시선이 마주치면 얼른 피하거나 혹은 "왜 째려봐!"라고 시비를 걸던 그 행인들이 아니다. 소매치기를 보듯이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그 적대공간이 아니다. 전광판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던 사람들을 일제히 멈추게 한다. 그리고 골방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던 것과는 전연 다른 감동을 맛보게 한다. 혼자서 제 갈길만 가던 외로운 거리의 군중들은 갑자기 깨닫는다. 왜 여름날 냉방이 잘 된 서늘한 방을 놓아두고 정체의 고속도로와 혼잡한 바다를 그 고생하며 찾아갔는지를-혼자 보는 바다보다 여럿이서 함께 보는 바다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그리고 물질은 나눌수록 줄어들고 마음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골목친구들처럼 다정하게 눈웃음치며 복화술(腹話術)로 말한다. "보셨지요!들으셨지요!느끼셨지요!"-외롭고 차갑던 거리가 이렇게도 뜨거운 광장으로 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축제요, 공동체의식이라는 것이다.

◇중앙방송이 운영하는 Q채널은 28일 오후 7시 '이어령의 문화강좌-붉은 악마의 문화코드'를 두 시간 동안 방송합니다. 재방송은 29일 오후 5시, 30일 오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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