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40년 숙원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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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사위 소위가 27일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을 내년 2월 임시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전격 합의함에 따라 여성계의 40년 숙원 과제가 풀리게 됐다.

여성계는 호주제가 폐지됨으로써 부계 혈통의 종속적 가족제도 대신 양성 평등한 가족이 새롭게 구성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유림 등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호주제 폐지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기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장애가 만만치 않다.

◆ 호주제 폐지의 의미=민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함께 살고 있는 계부 또는 생모와 성이 달라 고통을 받고 있던 재혼 및 이혼가정의 자녀가 일차적으로 혜택을 볼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모 또는 자녀의 청구에 의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녀의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현행법이 가족의 범위를 호주를 중심으로 부계혈통만 인정한 반면 개정안은 부모 양계를 모두 포함함으로써 현실적으로 변모된 가족관계를 반영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호주제가 유엔 인권위원회 등 국제기구에서 계속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만큼 폐지될 경우 인권국가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논란 예상되는 새 신분공시제=27일 법사위 소위가 민법 개정안에 대해 합의하고도 국회 본회의 통과 시기를 내년 2월로 늦춘 것은 한나라당이 호적을 대신할 새 신분공시제도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의 주호영 의원은 "법무부 등이 새 신분공시제도에 대해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라 졸속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며 "법사위 소위가 이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소위는 내년 1월 법무부가 준비 중인 내용을 중심으로 국회 주최의 공청회를 열어 호적제 대안을 논의키로 했다.

새 신분공시제도를 맡아 처리할 대법원과 법무부는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대안을 준비해 왔으나 1인1적제와 가족부 두 가지 안을 놓고 격론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1인1적제는 개개인이 하나의 신분등록부를 두고 여기에 가족사항을 기재하는 방식. 반면 가족부는 기준이 되는 사람을 정하고 그를 중심으로 가족 사항을 명시하는 방식이다.

대법원과 여성계는 1인1적제를 주장해 왔으나 이 경우 비용이 많이 들고 가족관계를 다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남인순 대표는 "호주제 폐지에 대해 여야가 합의한 것은 큰 진전"이라며 "야당이 신분공시제도를 문제 삼아 국회 통과 시기를 지연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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