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 남는다는데 굶주림 왜 그대론가요 재해·전쟁에 나라 황폐… 국제원조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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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금 지구촌에선 7초마다 한명꼴로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기아(饑餓),즉 굶주림 때문이지요. 얼마 전 이탈리아 로마에선 기아 문제를 풀기 위해 '세계식량정상회의'까지 열렸어요. 그만큼 기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지요. 도대체 기아 문제가 왜 생기는지, 해결 방법은 없는지 함께 생각해봐요.

1. 기아가 얼마나 심각하길래 세계 정상들이 모여 회의까지 하는 건가요.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약 8억1천5백만명 정도예요. 여덟명에 한명꼴로 굶고 있는 셈이죠.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에요. 하루에 섭취하는 영양분은 1백~4백㎉ 정도예요. 밥 한공기(약 3백㎉)도 안되는 음식으로 세끼를 때우며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는 거지요.

이렇게 굶어 죽는 사람은 어린이·어른을 통틀어 매년 3천6백만명이나 돼요. 특히 가뭄과 홍수, 그리고 전쟁으로 신음하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남쪽 지역에선 기아 문제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어요. 굶주리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27%나 된답니다. 중국·인도 등 아시아는 경제가 나아지면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줄었어요. 그러나 중남미와 주변 카리브해(海) 지역은 여전히 상황이 어려워요. 세계은행은 1달러(약 1천2백원) 미만의 식비로 하루를 버티는 '최극빈층'이 무려 11억명을 넘는다고 얘기해요.

2. 식량이 그렇게 부족한가요.

그건 아니랍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구촌 전체로 볼 때 지난 30년 동안 식량은 인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해 왔다고 발표했어요. 한사람이 하루에 흡수할 수 있는 열량(영양분)이 2천4백10㎉에서 2천8백㎉로 늘었다는군요. 올해 곡물 공급량, 즉 이미 저장해 놓은 식량에다 올해 생산할 식량을 합친 양은 24억t 정도지만, 예상되는 식량 소비량은 19억t 가량이에요. 5억t 정도의 식량은 저축할 수 있다는 계산이죠.

이처럼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왜 굶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걸까요. 그건 식량을 생산해내는 지역이 몇몇 나라에만 몰려 있는 탓이에요. 미국·호주 등 농업이 발달한 나라들은 농산물을 많이 수확해 수출까지 하지만, 땅이 거칠고 가뭄도 잦은 아프리카나 남아시아의 나라들은 식량을 외국에서 사다 먹어야 하는 형편이지요. 하지만 나라가 가난해 식량을 사올 달러가 없기 때문에 이들 나라의 국민이 굶주릴 수밖에 없는 거지요.

3. 그렇다면 원래 식량이 부족한 나라들은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맞는 말이에요.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식량 생산을 늘리기 위해선 우선 메마른 땅에 물을 대 농토를 늘려야지요. 뿐만 아니에요. 농부들도 많이 동원하고, 비료도 듬뿍 주고, 농사짓는 기계도 넉넉하게 공급해야 하지요.그런데 이게 모두 엄청난 돈이 드는 일이라는 데 문제가 있어요. 가난한 나라들이 이처럼 큰 돈이 있을 리 만무하지요.

자연재해도 걸림돌이에요. 지구온난화라고 아시죠. 오염 탓에 지구가 점점 따뜻해지는 현상이죠. 이 때문에 가뭄·홍수·폭풍 등 예기치 못한 기상 이변이 생기고요.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면 식량 수확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겠죠. 오스트리아의 한 연구소는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의 65개 국가의 식량 생산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80년 뒤에는 매년 2.8억t씩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어요.

사람이 만들어내는 재난,즉 인재(人災)도 식량을 갉아먹는 원인이에요. 유엔은 지난 20년 동안 아프리카의 농부 7백만명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로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어요. 이로 인해 식량 생산이 50%나 줄어들었다는 거예요. 특히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선 십수년간 계속된 전쟁 탓으로 농사는 전혀 못짓고 있다고 해요.

4. 잘 사는 나라들이 조금씩 도와주면 안될까요.

물론 도움이 되지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60개국 정부와 기업·개인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현재 82개국의 7천7백만명에게 식량을 도와주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모두 4백20만t의 음식을 나눠줬다는군요. 국제기아대책기구 등 수많은 비정부기구(NGO·정부가 아닌 일반시민들이 세운 사회운동단체)들도 식량 지원에 나섰어요.

하지만 도움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되지요. 잘 사는 나라들이 많은 돈을 내기를 꺼리기 때문이에요. 1996년 로마에서 첫 식량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세계의 지도자들은 "오는 2015년까지 굶주리는 인구를 현재의 절반 수준인 4억명으로 줄이자"고 결의했어요. 이를 위해선 매년 1천8백억달러의 돈이 필요하지만 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아 고민이지요. 선진국들이 기꺼이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순수하게 돕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기아가 몰고 올 전쟁이나 전염병 등의 후폭풍을 미리 막으려는 정치·외교적 의도도 있어요.

5. 첨단기술로 기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유전공학으로 '수퍼 옥수수' 같은 농작물도 만들잖아요.

유전공학은 분명 하나의 희망이지요. 유전자를 조작하면 가뭄에도 끄떡없이 버티는 쌀이나 비타민이 풍부한 종자를 개발할 수 있거든요. 지난 4월 초엔 국제 연구진이 쌀의 유전자 지도를 처음으로 발표하면서 식량 증산에 대한 부푼 기대를 갖게도 했지요.

하지만 이런 식량을 장기간 섭취해도 괜찮은지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게 문제예요. 국민 8백만명이 굶고 있는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얼마 전 미국이 제공한 1만t의 옥수수를 유전자 변형 식품이라는 이유로 거절한 것도 이 때문이에요.

6. 결국 앞으로도 기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건가요.

인구가 너무 빨리 늘어나는 게 문제예요. 2030년엔 세계 인구가 80억명에 이를 전망인데, 이들 모두를 먹여살리려면 식량 생산도 지금보다 60% 정도는 늘어야 해요. 유전공학을 이용하건, 농지를 늘리건 간에 이 정도로 식량을 늘리지 못하면 식량 문제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전세계의 숨통을 조일지도 몰라요.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아시죠. 전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지면서 잘 사는 나라는 점점 더 잘 살게 되고, 가난한 나라는 점점 더 못살게 되는 현상을 말하지요. 이렇게 되면 가난한 나라의 국민은 점점 더 배를 곯게 될 가능성이 있어요.

결국 가난한 나라들이 경제 성장을 통해 식량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가난과 굶주림이야말로 인류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야 할 숙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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