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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사형제가 범죄 더 흉악하게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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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형제 존치 여부를 놓고 계속되는 논쟁이 있는데 이재수씨의 의견을 읽고 독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어 몇 가지 적고자 한다. 이재수씨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즉 사형제 폐지가 인명경시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형제가 있기 때문에 범죄자가 더욱 잔혹해 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사형제가 있으므로 범죄자는 증거를 인멸하려는 의도에서 더욱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을 비교해 보자. 유럽은 사형제를 폐지했고 미국에서는 주법에 따라 다르지만 사형제가 존재하고 있다. 사형제가 있는 미국에서 왜 오히려 범죄가 더욱 심해지는가. 각종 첨단화된 장비로 무장한 고성능의 경찰이 미국에는 있지만 범죄는 갈수록 흉포화하고 있다. 원인은 바로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명경시 풍조를 만연시키는 것이다. 범죄는 사회보장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선 미국과 유럽의 예를 보면, 상대적으로 빈부격차가 큰 미국에서 범죄가 훨씬 흉악하며(물론 여기에는 총기소지 유무 등도 많은 부분 기인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잘 정비된 유럽에서 범죄가 덜 흉악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논지에서 약간 벗어난 얘기일지 모르지만 우리를 슬프게 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생각해 보자. 생활고에 못 이겨 자식들을 아파트에서 내던져 살해한 비정한 사건이 사형제로 예방될 수 있었을까?

둘째, 진부한 논거인지는 모르지만 오판의 가능성이다. 사법제도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판의 가능성은 있다. 만에 하나 독자 본인이나 독자들 가족, 친지 중에 이러한 제도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부끄럽게도 우리는 얼마 멀지 않은 과거에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가장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셋째, 근대국가.현대국가에서 징벌의 목적은 범죄자의 재사회화라고 할 때 사형제의 폐지는 더욱 확실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형제 존폐는 현실적인 문제로 예산상의 문제다.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재수씨가 주장한 바와 같이 종신형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사형제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이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죄가 흉포화되면 더 많은 경찰관.검사.재판관이 필요할 것이고, 더 많은 범죄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이는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의 증가를 의미한다. 또한 범죄 피해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 상승이나 사회구성원의 통합결여도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이다. 범죄는 사회에서 오는 것이며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영조 경찰관·경찰청 외사관리관실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