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프런트] 1년 전 7000만원‘절망의 빚’… 이젠 부채 상환‘희망의 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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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구(61)씨는 지난해 가을까지 빚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구두가게를 하다 얻은 사채와 친지를 위해 섰던 보증으로 순식간에 빚이 7000여만원으로 불어났다. 추심업체 직원들을 피해 두세 달마다 집을 옮겨다녀야 했다.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던 허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았다. 공단의 지원으로 지난해 11월 법원에서 개인회생 인가를 받았다.

그는 현재 택시 핸들을 잡고 돈을 벌어 매달 50만원씩 갚아나가고 있다. 처음엔 추심업체 측이 “회생 인가를 받고서 다시 종적을 감추는 것 아니냐”며 허씨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성실성을 인정하고 있다. 허씨는 “이젠 끝이라고 여겼는데 열심히만 일하면 빚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5일 법률구조공단 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가 지난해 1월 설립 이후 이곳을 거쳐 개인회생·파산 결정을 받은 사람들 중 363명을 표본조사한 결과 79.6%(289명)가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자를 회생과 파산으로 나눠보면 회생 인가 결정을 받은 151명 전원이, 파산 결정이 내려진 212명 중 65.1%(138명)가 직업 활동을 하고 있었다. “회생·파산 후 과거의 생활로 돌아가는 등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으나 실제 구제를 받은 뒤 다시 자립을 위해 땀 흘리는 이들이 훨씬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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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업체를 운영하던 원모(41)씨의 경우 부도를 낸 뒤 2억원가량의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지난해 말 법원의 파산 결정을 받았다. 이후 원씨는 서울 시내의 한 인쇄업체에 직원으로 채용돼 일을 하고 있다.

최정규 센터장(변호사)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파산이 선고된 이들 가운데 65%가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결과”라며 “이번 조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아직 건강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10만여 명이 이 센터를 찾았고 이 중 서울 4400여 명을 포함해 모두 9597명이 개인회생이나 파산면책 등 법률 구조를 받았다.

금융위기 여파로 증가세를 이어가던 파산·회생 신청자 수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 월평균 300명가량이 센터를 찾아와 회생·파산 절차를 밟았으나 올해는 3월 158명, 4월 162명, 5월 179명 등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0%가량 감소했다는 것이다. 최 센터장은 “속단하기 이르지만 경기 회복세가 가시화하면서 서민들의 경제사정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현택 기자

◆개인회생·파산=빚이 많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경우 법원의 개인회생 인가 결정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의 수입 중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금액을 5년간 갚으면 나머지 빚은 면책이 된다. 빚이 너무 과중한데 갚을 능력이 없을 때는 파산 선고 후 면책 결정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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