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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제2부 薔薇戰爭제4장 捲土重來:"대장군의 딸이 인질로 잡혀 있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김민주는 철야현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있었다.

철야현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나주군 남평면에 있는 너른 들판으로 이름이 가리키듯이 예부터 철이 많이 생산되던 곳이었다. 백제 때는 실어산현(實於山縣)이라고 하였는데, 신라가 합병 후 이름을 바꾸었으며, 근처에는 풍산(楓山)과 덕용산(德山)이 있는 요충지였다.

김민주는 병부(兵部)의 차관급에 해당되는 대감으로 사기에 의하면 모든 군무를 총괄하는 병부의 제2인자에 해당하는 최고의 실력자였던 것이었다. 물론 장관인 영()은 한사람이었지만 대감은 두 사람으로 김양이 이끄는 동평군을 맞이하는 김명은 사태의 심각성을 예리하게 파악하여 뛰어난 군장인 김민주를 파병하였던 것이었다.

우선 동평군과 철야현에서 맞싸우게 함으로써 동평군의 군세를 파악하는 한편 동정을 엿보려는 선발대로 김민주를 파병하였던 것이었다.

김양이 이끄는 군사는 5천명. 그러나 김민주가 이끄는 관군의 숫자는 두 배에 해당되는 1만명이었다. 비록 김양이 이끄는 동평군의 군객이 매우 성하였다고 사기에는 기록하고 있었지만 정예부대인 김민주가 이끄는 관군의 기세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두 군사는 철야현에서 맞부딪쳤다. 관군은 성산이라고 불리던 성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있었고, 동평군은 덕용산을 배후로 진을 치고 있었다.

동평군은 비록 숫자가 적었지만 기동성에 있어서만은 뛰어난 전술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기마 때문이었다. 일찍이 무령군에서 번진을 토벌하던 전력을 통해 장보고는 무엇보다 말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구려의 유민이었던 이정기가 산동지방에서 강력한 번진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발해로부터 말을 수입해다가 가장 강력한 기병을 양성했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타고 싸우는 군사인 기병 한명은 백명의 창병을 감당할 수 있어 가히 일당백이었던 것이다.

말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던 장보고 역시 남해의 많은 무인도에 말을 풀어 방목함으로써 만 명의 군사를 모두 기병으로 무장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특히 정년을 비롯하여 장보고와 함께 무령군에서 활약하였던 효장들은 말을 타고 부리는데 신출귀몰이였다. 말은 뛰어난 기동력을 갖고 있어 무엇보다 속전속결이 최고의 관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출전하자마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장애물이 생긴 것이었다.

즉 선공에 나선 낙금, 이순행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퇴각하여 돌아온 것이었다.

"어찌된 일인가."

군막에 머무르고 있던 김우징이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낙금이 눈치를 살피며 말하였다.

"대장군 나으리께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나이다."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다니."

김양이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그러나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 낙금과 이순행은 입을 열어 말을 하려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내가 묻지 않더냐."

김양이 호통을 치자 낙금이 간신히 대답하였다.

"대장군 나으리의 따님이 바로 적중의 인질로 잡혀 있다하더이다."

그 순간 군막에는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낙금이 말하였던 장군의 딸. 그것은 김양의 외동딸 덕생을 말함이었다. 2년 동안 백률사를 도망쳐 은신한 채 중 아닌 중노릇을 하던 김양에게 찾아온 사람은 아내 사보와 어린 딸 덕생이 아니었던가. 그때 김양은 함께 경국의 대업을 도모하자던 아버지 이홍의 말을 전하러온 아내 사보에게 자진하여 죽을 것을 강요한 후 홀로 도망쳐 사라졌었다.

남편의 입신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살하여 죽은 아내의 곁에 누워 잠든 어린 딸을 홀로 남겨두고서. 그때 덕생의 나이는 5살. 이제 해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겨우 7살의 어린 딸이 아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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