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부 길거리응원>97년 한·일전 때 첫선… 이젠 세계 명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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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길거리 전광판 앞에 사람들이 모인 건 1997년 9월 28일 이른바 '도쿄대첩'부터다. 광화문을 지나던 행인들이 언론사 전광판을 통해 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한·일전을 지켜본 것이다.

한국은 이민성의 왼발 중거리슛으로 2-1 역전승을 거뒀고, 응원하러 도쿄에 간 붉은악마와 더불어 전광판 밑 관중들의 환호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때까지 전광판 관람은 가전제품 판매장이나 역 대합실·다방·목욕탕에 모여 보던 이전의 축구 공동시청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집에 못들어가 길에서 경기를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97년 8월 결성된 PC통신 동아리 붉은 악마 젊은이들이 전광판 응원을 활용하면서 길거리 응원은 본격화됐다. 붉은 악마는 97년 10월 국가대표팀의 우즈베키스탄 원정경기 때 길거리에서 응원했고 한국은 이 경기에서 프랑스월드컵 본선 진출을 사실상 확정했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 전에는 5천여명이 전광판 밑에서 밤을 샜고,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에서도 길거리 응원은 국가대표 경기의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10일 한·미 전에는 서울 46만명 등 전국적으론 81곳에서 약 68만명(경찰 추산)이 전광판 아래서 한마음이 되는 등 길거리 응원은 이번 월드컵의 명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박수는 95년 프로축구 수원삼성 응원단의 응원구호 '수~원삼성 짝짝짝 짝짝'에서 따온 것이다.

또 응원가 '오~필승 코리아'는 부천 SK응원단이 '오, 부천 에프시(FC·Football Club)'라고 불렀던 응원가를 변형시킨 것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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