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아파트 탐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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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마을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놀이터이자 공부방이다. [조영회 기자]

최근 들어 작은 도서관 운동이 확대되고 있다. 그중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 마을 도서관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연말 천안시 쌍용동 주공9단지 1차 아파트에 문을 연 ‘느티나무마을 도서관’이 개관 7개월을 맞으며 모범적인 마을 도서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관심 있는 몇 사람이 아니라 주민이 만들고 주민이 운영하는, 말 그대로 ‘마을 도서관’인 셈이다.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 받고 있는 느티나무마을 도서관을 찾았다.

글=장찬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도서관

느티나무마을 도서관은 지난해 12월24일 문을 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도서관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부른다. 도서관 이름은 단지 내에 있는 350여 년 된 느티나무에서 따왔다. 도서관이 생기면서 어린 자녀를 둔 주부들의 삶이 달라지고 있다. 더 이상 큰 길 건너에 있던 시립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마을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주중엔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문을 열고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9단지 입주자대표회의와 노인회, 푸른천안21 등 마을 구성원과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 만든 도서관이다.

주민 정성으로 3000여 권 책 모아

느티나무 마을 도서관은 어린이 특화도서관이다. 유아와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이 가득하다. 책은 두 차례에 걸친 ‘마을도서관 건립 책 모으기 행사’에서 모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지 않게 된 책들을 여기저기에서 기증 받은 게 현재는 3000권이 넘었다. 기증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느티나무 마을 도서관은 7월 중순까지 모아진 책을 분야별로 정리해 원하는 주민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도서관 관리는 아파트 주민 6명이 돌아가며 맡았다. 아이들을 챙기고 책을 정리하며 도서관 전체를 관리한다. 이웃들을 위해 선뜻 자원봉사자로 나선 것이다. 모두 지난해 9월부터 도서관 코디네이터 교육과정을 들으며 준비했던 덕에 도서관을 관리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진 않다.

아이를 혼자 두고 맞벌이를 해야 했던 엄마들은 느티나무 도서관이 있어 안심이 된다. 항상 도서관에 머무르며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봐 주는 자원봉사자들이 단지 내 우리 이웃이기 때문이다.

엄마들을 위한 다양한 강좌

느티나무 마을 도서관의 특징 중 하나는 딱딱한 책상과 의자 대신 푹신한 소파가 있다는 점. 살짝 떠들어도 괜찮다. 온돌 바닥에 누워서 뒹굴어도 된다. 도서관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아이에게 소리 내서 책을 읽어주는 엄마도 많다. 아이들의 반응도 좋다.

도서관에선 주민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모두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주민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가장 인기가 많은 건 매달 넷째 주 금요일 오후 7시에 마련되는 영화상영. 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지금까지 ‘업’ ‘아주르와 아스마르’ 등이 상영됐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손잡고 와서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앉아 보는 영화 반응이 최고다. 영화 상영 20~30분 전부터 자리가 꽉 찰 정도다. 종이 접기와 한자 교실도 인기다. 모두 주민들이 자처해 단지 내 아이들의 선생님이 됐다. 종이 접기 교실은 두루마리 휴지 케이스 같은 실용적인 소품을 만들어 주부들에게 인기가 좋다. 한자 교실은 아파트 노인회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로 아이들이 한자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해 뭘 할까?

느티나무마을 도서관은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단지 내 노인 수보다는 어린이 수가 훨씬 많은데 정작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나 지원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주민자치회와 관리사무소는 지난해 8월부터 마을 어린이도서관 만들기 추진 준비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4개월 만에 관리사무소 2층에 도서관 문을 열었다.

단지 관리동 건물에 있던 민간어린이집을 시립어린이집으로 전환하면서 생긴 유휴공간을 도서관으로 꾸몄다. 그동안 단지 내 마을 장터 운영을 하면서 모아진 수익금 2500만원을 투자했다.

관심 있는 몇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와 주민들이 함께 노력해 책을 모으고 자원봉사자 교육을 책임지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더욱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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