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축구'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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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축구의 발상지는 영국이 정설이다. 축구의 영어 'soccer'에서 'soc'는 '룰에 따라 함께 한다'(in association)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영국 공립학교에서 축구게임은 두 갈래였다. 운동장이 넓은 곳에서는 손과 발을 함께 쓰는 럭비가 유행했고, 운동장이 좁은 곳에서는 발로만 굴렸다.

1863년 영국축구협회가 발족되면서 발로만 차는 게임이 축구의 표준이 됐다. 1872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간의 0대0 무승부 경기가 최초의 국제경기였다. 이후 식민지국가들로 속속 전파되면서 축구는 '영국 최대의 문화적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남미사람들 가운데 축구가 아즈텍이나 마야 등 그들의 옛 고산(高山)문명에서 유래됐다고 고집하는 이가 적지 않다. 안토니오 델토로라는 남미의 유명한 축구시인은 '산간지대의 거칠고 무료한 삶을 떨쳐내고/평원으로 내려와/축구를 창조한 그 발을 찬미하노라…'고 읊었다.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는 축구클럽을 위해 작곡됐다. 브라질에서 삼바축제는 축구 카니발의 다른 이름이다. 멕시코는 유혈혁명의 '총알축제'와 '풋볼(축구공)축제'가 번갈아 되풀이된 역사를 지녔다.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축구이론가인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는 일찍이 축구를 산문체와 운문체의 2개 유형으로 나누었다. 거칠고 잘 조직되고 체계적인 축구, 이는 곧 유럽형이다. 유연하고 즉흥적이고 개인적이고 에로틱한 축구가 곧 남미형이다. 역대 월드컵은 이 두 산맥간의 주도권쟁탈전이나 다름없었다.

현란한 개인기와 경쾌한 리듬축구가 파워와 시스템의 유럽축구에 밀리면서, 또 남미의 슈퍼스타들이 유럽 프로구단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둘간의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특히 4년마다 해외에서 뛰는 스타들을 본국으로 불러다 급조하는 월드컵 국가대표팀들은 그 컬러와 스타일이 갈수록 닮아간다. 유명감독이나 코치는 어디든 스카우트 돼 축구팀의 글로벌 경영도 본격화한다. 유럽식 조직축구와 남미식 개인기가 접목된 '퓨전축구'가 '축구의 제3세계'인 아프리카에서 돌풍을 몰아온다. 바야흐로 축구의 세계화 시대다.

개막전에서 세계 최강 프랑스를 꺾은 세네갈은 '작은 프랑스'팀이나 다름없다. 주전 대부분이 프랑스 프로선수들이다. 프랑스의 '예술축구'도 옛 식민지 아프리카 출신들의 순발력과 스피드와 유연성을 접목시킨 합작품에 불과하다. 독일의 '녹슨 전차군단'에 사우디아라비아가 8대0으로 대패한 것은 해외진출과 담쌓은 '우물안 축구' 탓이 크다.

'매직(마력)축구'의 실종을 아쉬워하는 축구 애호가들도 적지 않다. 물 흐르듯 매끄럽고 경쾌한 리듬과 개인기로 중앙돌파를 해나가는 남미축구의 미학이 거친 전천후 압박수비 앞에 설 땅을 잃었다. 너무도 거칠고, 심각하고, 전투적인 축구투사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가 공을 낚아채 카프카에 패스하고 슛골인 순간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그리는 고문당한 22명의 영혼'이란 풍자까지 나돈다.

한국의 히딩크축구 또한 일종의 세계화실험이다. 축구도 이제 개방만이 살 길이다. 유럽식 조직력과 '붉은 악마'의 혼이 어우러진 한국식 퓨전축구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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