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 ① : 치아 건강 온몸으로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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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50대 직장인 K씨(서울 서초구)는 올해 초부터 입에서 신나같은 냄새가 나고 잇몸 염증이 심해 신경이 쓰였다. K씨는 최근 구강 검진을 받았는데 치과의사는 그에게 내과에서 혈액검사를 받으라고 권했다. 혈액검사 결과 그는 당뇨병이 있는 것으로 판정됐다.

20대 회사원 P씨(여)는 늘 왼쪽 광대뼈 부근에서 묵직한 느낌을 받았고 코가 잘 막혔다. 분당 Y치과의 진단 결과 위턱 어금니의 심한 충치가 원인이었다. 썩은 치아를 뽑고 항생제 치료를 받은 후 그의 축농증 증상은 사라졌다. 우리 조상들은 건강한 이를 오복(五福)의 하나라고 중시했다. 중앙일보는 치아의 날(6월 9일)이 있는 6월의 '국민건강 업그레이드' 시리즈 주제로 치아 건강을 택해 네번에 걸쳐 다룬다.

◇치아와 장수=치아는 크게 세가지 기능을 한다.음식물을 씹는 저작(咀嚼), 대화가 가능하게 하는 발음,첫 인상을 결정짓는 미용기능이다.

건강한 성인은 모두 32개의 치아(이중 4개는 사랑니)를 보유한다. 충치·풍치(잇몸병)같은 구강 질환,사고·부주의 등으로 이중 일부를 잃는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80세까지 20개의 치아를 유지하는 것을 장수의 비결로 꼽는다.'80-20'캠페인을 벌이는 이유다. 현재 우리 국민의 건강 치아수는 이보다 적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65~74세 노인의 평균 자연 치아 수는 17개.

정부는 2010년까지 이 수를 19개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나 쉽지 않은 과제다.

◇치아의 전신건강 영향=예치과 김석균 원장은 "치아의 씹는 기능과 관련된 근육·신경은 뇌신경에 연결돼 있다"며 "치아가 부실해지면 뇌의 활동이 약화돼 치매를 일으키거나 머리가 나빠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 교토대 오시마 기요시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맛있게 먹고 머리가 좋아지는 식뇌학 이야기』에서 음식물을 씹으면 뇌에 자극을 전달하는 얼굴 근육이 발달, 뇌가 활성화되고 시력까지 좋아진다고 밝혔다. 일본의 동물실험에서도 씹지 않아도 되는 분말사료보다 딱딱한 사료를 먹은 쥐들이 뛰어난 학습능력을 보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본의 한 조사에선 씹지 않아도 되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 시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윗니와 아랫니의 맞물림이 나쁘면(부정교합) 아래턱이 앞·뒤·옆으로 튀어나오는 등 위치가 바뀌게 된다. 이 결과 목뼈가 비뚤어질 수 있고 이는 목·어깨에 통증을 부른다.목뼈의 비정상은 등뼈까지 휘게 한다.이때 머리가 멍해지거나 편두통·만성 피로가 생긴다.적잖은 허리·무릎 통증은 치아에 원인이 있다고 치과의사들은 말한다.

지난해 경희대 치과병원은 대학생 50여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검사를 했다. 학생들에게 권투선수의 마우스 피스 같은 교합 안정장치를 입에 물게 한 뒤 근력의 증감을 검사했더니 근력이 25%나 향상됐다.

일부 치아를 잃으면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상실된 치아를 떠받쳐온 주변 치조골이 없어져 얼굴 길이가 짧아지고 주름이 많아지며 입 주위가 함몰된다. 앞니가 빠지면 발음이 새고 부정확해진다.

서울대치대 구강병리과 홍삼표 교수는 "외모가 늙어보여 자신감 결여·우울증 등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치아 상실로 음식을 잘 씹지 못하게 되면 건강·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영양장애가 우려된다. 경희대치대 교정과 박영국 교수는 "특히 어금니를 잃으면 잘 씹지 못해 소화장애가 온다"며 "음식의 질감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 턱관절 운동을 조율하는 앞니를 잃으면 아래턱 운동이 불안정해져 음식물을 제대로 씹기가 어려워진다. 치아를 잃은 후 그냥 방치하면 인접 치아나 맞물리는 치아가 그 빈 공간으로 쏠리는 도미노 현상까지 일어난다.

전북대 치대 신금백 교수는 "치아를 모두 잃으면 온전한 사람에 비해 노동력이 15~27% 감소하고 틀니를 끼우면 이중 50%가 복원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치과가 종합병원』이란 책을 쓴 치과의사 황영구 박사는 "만성피로·천식·감기·알레르기·비염·어지럼증·두통·여드름·허리 통증·갑상선질환·혈압·중이염·생리통·불임 등이 치아와 관련이 있다"고 적고 있다.

자신을 찾아온 만성질환 환자의 80~90%가 치아 치료를 통해 만족할 만한 치료효과를 얻었다는 주장이다. 치아를 튼튼히 하면 심장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팀은 '심장병 환자는 87%가 치주질환을 보유, 건강한 사람(29%)보다 약 3배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또 미국 미네소타대학 연구팀이 최근 토끼에게 치태를 일으키는 세균들을 접종한 결과 심장이상 증세와 혈압상승 등이 관찰됐다.치주질환이 인슐린 생산을 방해해 당뇨병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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