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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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킬러 바티(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애칭)의 부활이 죽음의 F조에 속한 아르헨티나의 16강 고지를 향한 첫걸음을 가볍게 했다.

바티는 월드컵 남미 지역 최종 예선에서 에르난 크레스포에게 주전 자리를 뺏겨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빠져 있었고, 이탈리아 프로 리그에서도 소속팀인 AS 로마에서 부진을 거듭, 그를 아끼는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바티는 아픔을 딛고 월드컵 3회 연속 해트트릭, 월드컵 최다골(14골) 경신을 향해 부활의 축포를 쐈다.

바티가 후반 18분 터뜨린 결승골은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의 골이었다. 베론의 총알 같은 좌측 코너킥이 반대편 골 포스트를 통과하는 순간 바티는 사각에서 러닝 점프하며 옆머리로 볼을 밀어 넣었다. 신이 내린 감각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골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일방적인 공격 속에 90분간 나이지리아는 몰리는 경기를 했다. 아르헨티나는 베론을 중심으로 오르테가·로페스의 좌우측 날개를 활용하며 바티에서 마침표를 찍는 화려한 공격을 펼쳤다. 아르헨티나는 역시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다운 면모를 보였다.

안정된 공수, 화려한 미드필드, 공포의 스트라이커 진영 등 우승 후보로서의 모든 것을 과시했다. 아르헨티나와 우승 후보 빅2로 꼽히는 프랑스가 컨디션 난조로 침몰한 것과 달리 아르헨티나는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한 것이 이번 경기로 확인됐다.

수비 중심의 나이지리아 전술을 쉽게 깨지 못하고 몇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바티·베론 등이 살리지 못해 조급한 경기를 한 점은 지적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몸이 가벼웠고 집중력과 스피드 등에서 난적 나이지리아를 압도하는 경기 운영을 했다. 반면 나이지리아는 아르헨티나의 기세에 눌려 특유의 현란한 개인기와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팀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오코차·오그베체·아가호와·카누 등 세계적인 빅리그에서 뛰는 스타들이 즐비한 나이지리아였지만 세네갈 같은 응집력과 투쟁심이 결여돼 아르헨티나에 경기의 주도권을 내줬다. 특히 카누가 전반 이른 시간에 부상해 나이지리아의 전체적인 팀 전술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아르헨티나는 모든 선수가 골을 터뜨릴 수 있는 킬러였다. 특히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의 선수 운용을 눈여겨볼 만했다. 남미 지역 예선에서 최다 득점자였던 크레스포를 후반 중반 이후 바티와 교체했고, 아이마르 역시 교체 투입하는 독특한 용병술을 선보였다.

화려한 멤버를 갖고 있는 팀의 경우 자칫 베스트 멤버 활용에 따른 갈등으로 경기력이 와해될 수 있다. 이 점이 아르헨티나의 우승 전선에 보이지 않는 장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비엘사 감독은 특유의 카리스마를 앞세워 스타 군단을 경기에 몰입케 하는 지도력을 선보였다.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스웨덴과 어려운 경기를 남겨두고 있지만 16강 진출의 7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고비는 잉글랜드나 스웨덴이 아니라 부상과 경고 누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만큼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강임을 과시했다.

<중앙일보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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