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김진의 시시각각

민주당의 맹북주의 6·2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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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로부터 8년 후인 2010년 6월 29일. 이날은 앞으로 ‘대한민국 공동체 위기 경고의 날’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북한의 천안함 도발을 규탄하는 국회 결의안에 이 나라의 제1야당이 반대한 것이다. 어뢰 추진체라는 명백한 증거가 드러났고, 미국과 유럽·중남미·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가 북한을 규탄했는데도 피해국가의 제1야당이 살인자를 지목하는 것을 끝내 거부한 것이다. 천안함 사태 이래 민주당이 보여준 양태로 보아 예상됐고, 같은 날 세종시 수정안 표결이라는 큰 일에 묻혔지만, ‘2010년 6·29’는 다른 6·29 못지않게 충격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민주당은 한국 야당사의 종가(宗家)이자 명가(名家)다. 민주당은 55년 이승만 독재권력에 대항하는 야당 보수주의자들이 창당했다. 민주당은 독재라는 권력 방식에 대해 끈질기게 투쟁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절 민주당은 민주화라는 공동체 가치를 위해서라면 정권에 강력하게 맞섰다. 그러나 50~90년대의 민주화 투쟁 기간 중에도 국가안보라는 또 다른 가치에 관해선 민주당은 정권과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장면·신익희·조병옥·유진산·김영삼·이철승 같은 민주당(이후 신민당)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의 위험을 누구보다도 꿰뚫고 있었다.

야당 지도자들은 국가안보가 무너지면 야당이나 민주화 운동단체들도 존립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김대중의 또 다른 라이벌이었던 이철승은 더욱 그러했다. 그는 평생 반공투쟁에 종사했으며 박정희의 개발 독재가 국가안보 측면에선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까지 생각했다. 굳이 야당 선조들의 철학을 빌리지 않더라도, 공동체가 있어야 야당도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기사가 모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고급 음식점에서 영양식을 즐기고, 국내외에서 의원님으로 대접받는 것도 다 공동체와 국민 세금 덕분이다.

그런 민주당 의원들이 공동체를 공격해서 젊은 군인 46명을 죽인 살인자를 규탄하는 걸 거부하고 있다. 그런 살인자를 감싸고 있다. 엉터리 인사를 조사위원이라고 추천해놓고는 조사단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천안함 조사단은 세계가 인정한 민·군·국제 합동조사단이다. 그런데도 ‘뉴 민주당 플랜’을 만들었던 당내 최고 인텔리가 이를 ‘관제(官制)’라고 비난한다. 의원들은 물론 대표와 대통령후보를 지낸 이들까지 맹북(盲北)주의라는 미망(迷妄)의 춤을 추고 있다. 그들은 어느 나라 의원인가. 자신들의 기름진 생활을 공급해주는 이가 누구인데 그들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

그들에겐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북한을 규탄하지 않아도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했고, 친북파가 대거 당선됐다. ‘전쟁이냐 평화냐’만 외치면 20, 30대는 자신의 편이라고 그들은 믿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이 믿는 대로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당의 충격적인 맹북주의 6·29만큼은 규탄해 놓아야겠다.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도 국가안보만큼은 협력했던 민주당 선조들의 개탄을 모아, 87년 6·29를 이끌어낸 시민의 함성을 모아, 차가운 바닷물에 20여 년의 짧은 생을 던져야 했던 46인의 비명을 모아, 하늘 위에서 분노하고 있을 한주호 준위의 영혼을 불러,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어가 허용하는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민주당의 6·29’를 규탄한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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