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범벅 펠리컨, 죽는 길인 줄 모르고 날개 퍼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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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까아아아악.”
미국 루이지애나주 남부 해안에 위치한 잭슨항. 항구 안쪽 회색 빛 창고 모양의 건물로 들어서자 비명에 가까운 새 울음소리와 함께 퀴퀴한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건물 안은 흰 그물망이 덮인 나무상자들로 빼곡했다. 새들은 그 속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21일(현지시간) 찾은 국제조류구조 리서치센터(IBRRC)가 운영하는 긴급조류재활센터에는 언뜻 봐도 수백 마리의 새들이 있는 듯했다.
안내를 맡은 IBRRC 관계자가 그물망을 걷어냈다. 길고 넓적한 부리가 눈에 들어왔다. 펠리컨이다. 목덜미부터 몸통까지 검은 윤기가 흘렀다.

IBRRC의 제이 홀컴(46) 디렉터는 “갈색 펠리컨이다. 기름을 뒤집어 써 검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니 큰 소리나 카메라 플래시는 피해달라”고 당부했다. 센터에는 450여 마리의 펠리컨을 포함해 모두 634마리의 새가 기름 제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홀컴 디렉터는 “(기름 범벅이 된 펠리컨은) 대부분 루이지애나 연안에서 발견되고 있다. 최근 기름 오염 지역이 확대되면서 앨라배마와 플로리다 지역에서도 구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존 그리셤의 추리소설 펠리컨 브리프가 떠올랐다. 루이지애나주 멕시코만에서 유전이 발견돼 펠리컨이 죽어간다는 보고서 ‘펠리컨 브리프’가 소설의 모티브다. 현재 맥시코만의 펠리컨은 남부 루이지애나 베니스 남동쪽 해저 유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름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이 유정은 영국의 석유회사 BP의 시추시설 ‘딥 워터 호라이즌’이 지난 4월 20일 폭발한 이후 원유를 바다로 토해내고 있다.

그물이 덮인 상자를 지나자 센터 관계자들이 펠리컨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날개, 부리, 몸통이 온통 기름투성이였다. 펠리컨은 사람 키만 한 날개를 쭉 펴고 쉼 없이 미친 듯이 퍼덕였다. 몸에 붙은 이물질을 털어내려는 본능적인 몸짓이었다. 그러나 그런 몸짓은 오히려 끈적이는 기름을 몸 전체에 착 달라붙게 만들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펠리컨이 그것을 알 리 없다. 펠리컨은 계속된 날갯짓에 지쳐 결국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검은 펠리컨을 사진에 담기 위해 카메라를 꺼냈다. 하지만 쉽게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작은 카메라 화면에 반복돼 비치는 참담한 광경에 손이 떨려서다.

그러는 사이 센터 직원 2명이 달려들었다. 한 명은 펠리컨의 날개를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영문을 모르는 펠리컨은 “까아아악, 까아아악” 비명을 질러댔다. 다른 한 명이 펠리컨의 몸에 기름 제거를 위한 클리너를 부었다. 펠리컨은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맞섰다. 펠리컨에게는 또 다른 이물질로 느껴질 뿐이다. 뾰족한 부리 안에 저장된 먹이도 긁어내야 한다. 부리에서 나온 먹이들 역시 기름에 절어 있다. 면봉으로 눈 주위를 닦고 몸통도 세세히 닦아준다. 바닥으로 시커먼 기름때가 줄줄 흘러내렸다.

홀컴 디렉터는 “30여 명의 직원이 교대로 하루 종일 작업을 해도 닦아줄 수 있는 새는 30~35마리 정도”라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센터에 들어온 펠리컨들은 회복이 돼도 돌아갈 바다가 없다. 곳곳에 기름띠가 퍼져 있고, 먹이들은 기름에 절어 있다. 그 물고기를 자신과 새끼가 먹는다. 이렇게 몸 속에 들어간 기름은 생식기능을 마비시킨다고 한다. 조류 재활센터 관계자는 “어제는 어미를 잃은 새끼 펠리컨 15마리가 극적으로 구조돼 센터에 왔다. 회복해도 받아 줄 가족과 바다가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펠리컨은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 최상위군에 속하지만 오염에는 취약하다. 1960년대에 DDT(살충제)로 인해 해양생태계가 오염되면서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이후 DDT 사용은 금지됐고 갈색 펠리컨 복원 작업이 진행됐다. 펠리컨은 50년 만에 다시 인간이 초래한 재앙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렸다.

루이지애나=곽재민 기자 jmkwak@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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