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대학들이 가르치지 않는 것을 가르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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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12면

코르볼 총장은 사이클링을 좋아한다. 주말에 자전거를 타며 한 주를 시작할 힘을 얻는다. 신인섭 기자

1530년에 창립된 콜레주드프랑스(Coll<00E8>ge de France)는 전 세계 교육·학술계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인문학·기초과학 분야의 고등교육·연구기관이다. 특히 콜레주드프랑스의 위상은 최첨단 연구 수행, 새로운 지식 보급, 학제 간 교류에서 독보적이다.

석좌교수 52명, 역사 480년 ‘콜레주 드 프랑스’ 총장 피에르 코르볼

콜레주드프랑스의 피에르 코르볼(69) 총장이 기초기술연구회(이사장 민동필)와 주한 프랑스대사관 공동 초청으로 지난달 29일에서 이달 2일까지 한국을 방문했다. 프랑스 과학학술원과 의학한림원의 회원인 코르볼 총장은 심혈관 치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이다.

코르볼 총장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서울대 의대에서 강연하고 기초기술연구회와 국제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관인 기초기술연구회는 세계적인 연구기관 육성을 위해 1999년 설립돼 13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관할하고 있다. 코르볼 총장을 지난달 29일에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총장이 된 뒤 연구 활동은 중단했는지.
“평생 진료와 연구 활동을 병행했다. 총장 취임 후에는 행정 외에 연구에도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콜레주드프랑스의 특징은.
“1530년 프랑수아 1세가 콜레주드프랑스를 설립했다. 르네상스에 관심이 많았던 프랑수아 1세는 이탈리아를 방문했는데 귀국 후 당시 소르본대에서 가르치지 않았던 그리스어와 수학을 프랑스에서도 가르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르본대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탄생한 게 콜레주드프랑스의 전신인 콜레주루아얄(Coll<00E8>ge Royal)이다. 국왕은 아무나 조건 없이 강의나 세미나를 무료로 들을 수 있게 했다. 오늘날까지 유지된 전통이다. 창립 정신에 따라 우리는 프랑스의 다른 대학들이 가르치지 않는 것을 가르친다.”

-어떻게 가르치나.
“우리 교수들은 매년 각기 13시간 분량의 강좌와 세미나를 진행해야 한다. 매번 새로운 내용이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공개 강의를 듣는 이는 어떤 사람들인가.
“조사를 해 보니 오프라인 수강자와 온라인 수강자들의 성격이 달랐다. 오프라인 수강자들은 연령이 50~65세가량으로 교육 수준이 높았는데 자신의 연구나 업무 때문이 아니라 흥미 때문에 강의를 수강하는 사람이었다. 온라인 수강자들도 교육 수준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들은 지난해의 경우 500만 시간 분량의 강의를 내려받았다. 우리 강의가 내용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치다. 온라인 수강자들의 연령대는 25~34세 정도다. 그들 중 거의 50%는 자신의 연구·직업 활동을 위해 우리 강의를 듣는다. 우리 강의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층의 수강자가 형성됐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콜레주드프랑스의 경쟁 상대는.
“아인슈타인이 몸담았던 프린스턴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를 비롯한 연구소들이 있으나 이들에게는 연구 기능만 있고 우리처럼 공개 강좌와 같은 교육 기능은 없다. 우리 웹사이트와 경쟁 관계인 웹사이트에 대해서도 조사해 봤는데 우리처럼 매년 새로운 내용을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곳은 극소수였다. 앞으로 우리의 온라인 강의를 보다 많이 영어로 번역해 제공할 예정이다.”

-석좌교수가 52명인데 숫자를 100명, 200명으로 늘리지 않는 이유가 있는가.
“52가 마법의 숫자는 아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예산이 늘면 석좌교수 수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너무 큰 오케스트라는 지휘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교수진의 규모가 큰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석좌교수들은 다른 교육·연구기관에서 겸직할 수 있나.
“그렇다. 다른 나라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박사 과정 학생들이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들의 지도를 받을 수도 있나.
“그렇다. 파리대와 맺은 협정에 따라 강의를 듣거나 3년간 우리 연구시설에서 연구할 수 있다.”

-콜레주드프랑스는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정치 환경에는 어떻게 적응하고 있나.
“이름에 나타난 것처럼 콜레주드프랑스는 프랑스의 콜레주드프랑스다. 유럽 전체를 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시스템과 가까운 교육·연구기관이 지난해 벨기에에 생겼고 독일의 베를린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기관 설립에 관심을 보이는 동료들이 있다.”

-콜레주드프랑스의 설립 정신 중 하나는 인문주의다. 오늘날에도 인문주의가 콜레주드프랑스에 살아 있나.
“그렇다. 인문학·사회과학 분야의 석좌교수 수가 기초과학 분야 석좌교수들보다 약간 많다. 조금씩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석좌교수들이 늘고 있기는 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석좌교수들 간에 시너지가 이뤄지고 있는가.
“물론 그렇다. 52이라는 숫자가 그런 점에서 좋다. 가끔 일요일에도 모여 학제 간 토론이 이뤄진다.”

-석좌교수들은 어떤 대우를 받는가.
“최상의 대우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급료 수준보다 중요한 장점은 자유다. 또한 내부적인 경쟁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일반 대학의 경우 같은 분야 연구자들이 여럿 있기 때문에 경쟁이 벌어진다. 경쟁은 좋은 것이지만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여기 석좌교수들은 행복하다. 정년이 70세이지만 그 이후에도 이곳에 남아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인원이 제한돼 세계적인 학자라도 석좌교수가 되기 힘들겠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도 결원이 생기지 않으면 석좌교수가 될 수 없다. 예컨대 우리는 두 명의 이집트학 석좌교수를 둘 여력이 없다. 세계적인 이집트학 도서관이 여기 있고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공헌한 샹폴리옹이 이곳 석좌교수였다. 그래서 이집트학 석좌교수를 희망하는 학자들이 많지만 수용할 수 없다.”

-콜레주드프랑스에 대한 비판은 없는가.
“동료 학자들의 피드백은 어느 기관, 어느 연구자에게나 필요하다.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8년 전 12명의 외국인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를 외부에 구성했다. 위원회는 우리의 발전 전략을 평가한 보고서를 발간한다.”

-노벨상 수상 이후 석좌교수가 되는 경우가 반대 경우보다 많은가.
“수상 이전에 석좌교수가 되기도 한다. 수상 이후보다는 수상 이전의 학자들을 뽑는 게 더 바람직하다. 우리도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세계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으며 지나치게 고령이 아닌 학자를 뽑기 위해 노력한다.”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등 수많은 저명 학자가 콜레주드프랑스 석좌교수였다. 그들
과 관련된 일화는.
“우리 석좌교수들은 모두 개성이 강한 사람이다.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의 경우가 생각난다. 그는 공산주의자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에 참가했다. 최근 보수공사를 하다가 그의 실험실에서 기관단총을 발견했다. 파리 해방 당시 독일군과 시가전을 벌일 필요가 있을 경우 사용하려 한 것 같다. 졸리오퀴리의 경우처럼 콜레주드프랑스의 석좌교수는 연구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도 행동하는 개성 강한 인물들이다.”

-중·고등학생들을 과학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나.
“프랑스에서도 과학 전공 학생들의 수가 과거에 비해 20~30% 정도 하락했다. 인문학 전공 학생들의 수도 줄었다. 카르티에라탱(Le Quartier Latin·라틴구)에 있는 콜레주드프랑스·학술원·파리대는 중·고등학생들이 연구나 아니면 적어도 과학과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월 한 명의 석좌교수가 교외 빈민가에서 강연을 하며 학생들을 콜레주드프랑스로 초청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중앙SUNDAY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웹사이트(www.college-de-france.fr)를 방문하면 영어로 된 우리 강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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