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하고 달착지근 ‘세코시’햇마늘·햇양파는 환상의 짝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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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09면

입맛 예민한 식구와 함께 사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내 남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음식 투정을 하지는 않는다. 단지 거의 ‘절대미각’이라 할 만큼 예민할 뿐이고, 그것은 시댁 식구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예컨대 음식점에서 밑반찬으로 나오는 샐러드나 나물 종류가 조금만 신선도가 떨어져도 바로 알아낸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준의 것이지만 시댁의 식탁에서는 졸지에 ‘못 먹을 음식’으로 치부된다. 몇 년 전 내가 쓴 책에서도 밝혔듯이 남편의 절대미각 수준은 음식을 먹다가 간장이 바뀐 것을 알아채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꿀물을 타주어도 값싼 꿀과 비싼 꿀을 귀신같이 알아낼 정도다.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16> 초여름 저렴한 자연산 횟감, 병어

그러니 이런 남편이 아무 회나 먹을 리는 만무하다. 남편은 부산 출생이어서 나처럼 서울에서만 자란 사람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저렴한 광어나 우럭 같은 회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광어나 우럭은 비린내 없이 맑은 맛이고 게다가 양식으로 키워내니 가격까지 저렴하게 회를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다. 그런데 남편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회가 ‘별로’란다. 생선회라고 하기에는 맛이 너무 맹탕이고, 양식으로 키웠으니 식감도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항생제 먹여 키운다는 생각을 하면 더더구나 유쾌한 일이 아니다. 물론 값비싼 자연산 광어나 도다리쯤을 갖다 바치면 맛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린 불행하게도, 돈은 없고 입맛만 예민하다.

주머니 사정과 입맛의 균형이 깨져 있는 우리 식구의 선택은 제철에 나는 비싸지 않은 자연산 횟감을 고르는 것이다. 예컨대 겨울에는 숭어나 방어 같은 회를 즐긴다. 이들은 모두 자연산이고, 양식 광어나 우럭보다는 맛이 진하거나 식감이 좋다.
우리는 여름에 회를 먹고 싶으면 병어를 산다. 은빛 반짝거리는 마름모꼴의 생선인 병어는, 5월 중순 즈음부터 회로 먹을 만큼 맛있어진다. 이때부터 산란기를 맞아 생선 맛도 고소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병어는 모두 자연산이니 항생제 같은 것의 의심은 거두어도 된다.

수산시장이나 큰 재래시장에 가면 횟감 병어를 살 수 있다. 물론 고등어나 꽁치처럼 매일 나오는 것은 아니고, 물건 들어올 때에만 있다. 물론 횟감이라곤 하지만 활어가 아니고 죽은 생선이니 아주 싱싱한 병어를 사야만 회로 먹을 수 있다. 회로 먹을 만큼 싱싱한 것과 회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신선도가 떨어진 병어의 값은 꽤 차이가 난다.

횟감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방법은 일단 생선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수산시장에서 경쟁적으로 파는 상인들은 가끔 뜨내기손님들에게 엄벙덤벙 팔아치우기도 하지만, 단골을 상대해야 하는 동네의 재래시장에서는 이런 짓을 못한다. 수산시장에서 사려면 여러 가게를 들러 물건을 눈으로 비교해 보아야 하고, 자신이 없으면 동네 생선가게에 횟감 병어를 갖다 달라고 부탁해 사는 것이 현명하다.

생선에 약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직접 만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병어의 머리 쪽을 손으로 잡고 병어 몸통을 수평으로 들어보면, 싱싱한 것은 육질이 단단하여 비교적 빳빳하게 수평을 유지한다. 몸통이 아치 모양으로 휘는 생선이면 신선도가 떨
어진 것이고, 그건 조림이나 찌개용으로 써야 한다.

병어는 껍질과 뼈까지 모두 함께 썰어 먹는 일종의 ‘세코시’ 회다. 뼈째 먹는 생선으로는 전어보다도 훨씬 적합하다. 전어는 지느러미도 강하고, 무엇보다 뼈가 딱딱하다. 그에 비해 병어는 뼈가 연골이어서 부드럽다. 엔간히 썰어 먹어도 생선 가시가 입을 찌르는 일이 없다.

회를 썰 때는 머리를 자르고 내장과 지느러미 등을 깨끗이 다듬은 후 등뼈와 직각 방향으로 얇게 썰기만 하면 된다. 한꺼번에 자르기가 너무 큰 병어라면 등뼈 부위를 중심으로 반으로 갈라놓고, 나머지 부분을 얇게 썬다. 이때 생선의 가시 방향과 가능하면 직각이 되도록 썰어주는 것이 먹기에 편하다. 아무리 연골이어도 생선 크기가 크면 뼈도 굵게 마련이어서 썰 때 약간의 배려가 필요하다.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 곁들인 간장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생선 육질이 그만이다. 이 맛을 싱거운 양식 광어에 비할쏘냐. 가을 전어처럼 맛이 진하면서 등푸른 생선이 아니어서 비린내도 거의 없다. 게다가 맛이 연한 햇마늘과 마늘종, 햇양파가 제철인 시기이니 이런 것들과 함께 먹으면 환상의 궁합이다.

우리가 병어를 자주 선택했던 것은 무엇보다 가격이 ‘착하다’는 점이었다. 둘이 먹기 충분한 먹을 크기의 것도 7000~8000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병어 가격이 지난해부터 심상치 않더니 올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지구가 정상이 아니니 연안의 생선들도 정상일 수 없는 모양이다. 3, 4년 전과 비교하자면 거의 두 배 가격이고, 그러다 보니 잘 갖다 놓지도 않는다. 단골 생선가게 주인은 나를 보면 미안한지, 병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자기가 지레 신경질을 낸다.

그러고는 아쉬운 대로 횟감이 되지 않는 병어를 싼값에 가져가란다. 섭섭하지만 할 수 없다. 횟감은 안 되지만, 이 병어로는 조림을 하거나, 짭짤하게 절여 풋고추와 마늘을 넣고 쪄서 먹으면 그 맛도 아주 훌륭하다. 연하고 기름기 도는 육질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소금에 살짝 절인 병어를 튀김옷을 입혀 튀겨도 고소하고 연한 맛이 기가 막힌다. 강릉 같은 동해안의 재래시장에 가면 시장에서 가자미를 튀겨 파는 집이 많은데, 병어는 가자미보다 훨씬 맛이 진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렇게 맛있는 병어가 겨울에는 맛이 없어진다. 어느 해 겨울, 수산시장에서 나온 병어를 사다 썰어 먹어보았더니만 아뿔싸, 여름 병어에 비해 맛이 확 싱거워졌다. ‘전어를 사올걸’ 하는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러니 생선도 제철에 먹어야 한다.


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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