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후보의 '깽판'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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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대화만 성공하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 나머지는 대강해도 괜찮다"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발언은 언어습관·국정인식과 관련해 심각한 논란을 낳고 있다. '깽판' 같은 비속어는 대통령 후보가 쓰기에는 부적절한 말이다. 거리 유세에서 대중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이런 막말을 썼다는 짐작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후보가 내세우는 '새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 수준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저질 정치'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은 정치인의 말에 솔직함을 핑계로 한 비속어·험구·욕설이 담겨 있는 탓이다. 대통령 후보의 말은 정치문화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그런 측면에서 적절한 언어선택은 후보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남북대화는 중요하다. 문제는 다른 국정사안과의 조율이다. 6·15 정상회담 후 김대중 정권이 남북문제에만 매달리다가 민생은 헝클어지고 국정의 틈새가 생겼다는 게 국민적 경험이다. 그런 틈새로 권력부패가 기승을 부리고 서민의 삶은 고단해졌다. 때문에 '나머지는 대강'이라는 인식은 이런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구나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검찰 내에 나를 물먹이는 세력이 있다"(뉴스메이커)는 발언도 같은 논란을 일으킨다. 검찰에 대한 그의 불만과 의심 표출은 두번째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원 세력이 있다"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같은 당 한화갑 대표의 이어지는 검찰 비난도 똑같다.

이는 '이명재 검찰'의 중립성을 해치는 중대 발언이다. 후보는 친(親)이회창 세력이 누구인지, 불공정한 수사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검찰이 장난치는 게 아닌가"라는 등 자신의 관측·판단에 의존해 검찰수사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때문에 이런 식의 검찰 흠집내기에는 6·13 지방선거의 쟁점인 대통령 아들 부패 문제를 흐리려는 계산이 깔렸으리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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