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제2부 薔薇戰爭제4장 捲土重來:군사의 半을 정년에게 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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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행객이 나타나자 장보고가 보인 행동이었다. 장보고는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연회장을 뛰어내려 친히 행객을 맞아 두 손으로 얼싸안은 것이었다.

"어디 좀 보자."

장보고가 행객을 부둥켜안고 그 얼굴을 들여다 보며 말하였다. 두목도 번천문집에서 이 무렵의 정년을 '뒤엉켜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간신히 살아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었으므로 간신히 살아 돌아온 정년은 아마도 비렁뱅이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걸인을 다정히 맞아들이는 장보고의 모습을 모두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형님,그동안 안녕하셨소이까."

행객이 선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자 이를 받은 장보고는 강제로 잡아 연회장 위로 끌어올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방금 죽었던 아우가 살아왔소이다. 여러분 방금 나의 팔다리가 돌아왔고, 방금 나의 잃었던 두경(頭頸)이 돌아왔소이다."

이때의 장면이 번천문집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정년이 드디어 바다를 건너가서 장보고를 찾아보니 장보고는 술을 대접하여 극히 환대하였다. 술자리가 끝나기도 전에 신라국의 사자가 이르러 '대신이 임금을 시해하여 나라가 어지럽고 임금의 자리가 비어있다'고 하였다.…"

이윽고 정년을 맞아들여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고 나서 장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좀 전에 아찬 나으리께오서 나의 병력에 의지하여 임금과 아비의 원수를 갚게 해달라는 말씀을 듣고서도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던 것은 그러한 병력을 지휘할만한 마땅한 군장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오. 아무리 강성한 군사라 할지라도 이를 다스리고 통솔할만한 군장이 없다면 이는 한갓 까마귀들의 모임인 오합지졸(烏合之卒)에 불과할 것이오. 그런데 마침 천하장군인 내 아우가 이렇게 살아 돌아 왔소이다. 내 아우는 나와 같이 당나라에서 무공을 떨쳐 함께 무령군 소장의 지위에까지 이르렀던 영웅이오. 내 아우 정년이 있다면 반드시 나아가 승리를 이끌고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나서 장보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장보고가 말한 내용이 사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인의 말에 의분한 이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은 무용(無勇)한 사람이라고 했으니, 내 비록 용렬하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고인(古人)'은 공자를 가리키는 말로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장보고가 인용하고 있음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마땅히 제사를 지내야 할 혼령이 아닌 것을 제사하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다. 또한 옳은 일을 보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자의 이 말은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하는 것'과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의 두 가지를 경계하는 것으로 그 중 장보고는 '옳은 일을 보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見義不爲 無勇也)'의 문장을 인용하였던 것이다.

장보고의 선언에 좌중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환호작약하였다.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복수를 다짐하면서 모든 사람들은 천지신명께 임금과 아비의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하였다.

김양을 맞는 축하연회가 돌연 전투를 앞둔 출정식이 되어버린 역사적인 순간인 것이다. 이 역사적인 출진에 대해 두목은 번천문집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장보고는 드디어 군사를 나눠 5천명을 정년에게 주면서 정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가 아니면 화난(禍)을 평정할 사람이 없다.'"

장보고가 정년에게 나눠준 5천명의 군사는 청해진에 주둔하고 있던 정병 만명의 절반에 해당하던 대군으로 이처럼 선뜻 자신의 군사의 절반을 나눠준 장보고의 용기에 두목은 이렇게 감동하고 있다.

"장보고가 정년에게 군사의 반을 나눠 임무를 맡긴 것은 성현(聖賢)도 감히 결단하지 못하였던 인의(仁義)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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