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라운지] 긴 긴 밤의 향수 … '빛의 축제'로 달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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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과 핀란드 등 겨울 밤이 긴 북유럽 국가는 크리스마스에 촛불을 밝히는 루치아 축제를 연다. 올해의 루치아로 뽑인 안나베라 에릭슨이 지난 13일 동빙고동 유엔사 장교클럽에서 열린 루치아의 날에서 머리에 촛불 왕관을 쓴 채 행렬을 이끌고 있다.[임현동 기자]

"어두운 밤 헤치고 광명의 여신이 온다. 산~타 루치아."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유엔사 장교클럽. 불이 모두 꺼진 연회장에 20여명의 스웨덴 소년.소녀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산타 루치아' 노래를 부르며 들어섰다.

올해의 '루치아'로 뽑힌 안나베라 에릭슨(12.여)은 촛불을 꽂은 왕관을 머리에 쓰고 앞에서 행렬을 이끌었다. 연회장 중앙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선 '루치아 행렬'은 스웨덴의 크리스마스 캐럴 10여곡을 불러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날의 모임은 판문점 내 중립국 감독위원회 스웨덴 대표를 맡고 있는 라스 프리스크 스웨덴 육군 소장이 주한 스웨덴인과 스칸디나비아인들을 초청해 마련한 '루치아의 날' 행사다.

루치아의 날은 매년 12월 13일 스웨덴 전 지역에서 가족.학교.직장.교회 등 각 단위로 즐기는 전통적인 축제다. 루치아는 시실리의 성녀로 '빛을 가져오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어두운 스웨덴의 겨울밤에 빛을 가져와 달라는 의미의 행사다. 이날은 스웨덴에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로, 한국의 동지에 해당된다.

한 스웨덴인은 "이날은 해가 떠 있는 낮 시간이 4시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며 스웨덴의 겨울을 떠올렸다. 17세기부터 스웨덴의 축제로 자리 잡았으며, 이웃 나라로 전해져 핀란드에서도 성대히 치르는 축제가 되었다.

"이날 크리스마스 축제가 시작되는 거죠. 춥고 어둡기로 유명한 스웨덴의 겨울이 빨리 지나 봄이 오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프리스크 소장의 설명이다.

이날 행사를 위해 루치아 행렬이 입는 흰색 가운과 붉은 허리띠, 왕관 등 소품은 모두 본국에서 들여왔다.

또 레드 와인을 끓여 건포도.견과류 등을 넣은 음료 '글로그', 건포도를 넣은 빵 '루세 카테르', 생강과자 등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간식거리도 준비됐다. 크리스마스에 즐기는 음식인 훈제 청어, 미트볼과 햄, 흰죽에 우유.계피.설탕 등을 섞은 '리스그로' 등을 차려낸 약식의 '스모르가스보르드(스웨덴 원조 뷔페)'도 마련됐다. 30여년간 한국에 살고 있는 스웨덴인 비르기타 신은 "이렇게 '글로그' 향을 맡으며 '루치아의 노래'를 부르니 고향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하랄드 산드버그 주한 스웨덴 대사 부부, 마릴렌 쉐그렌 주한 스웨덴 부인협회 회장, 신광섭 한국-스웨덴협회 회장과 게르하르트 브뤼거 중립국 감독위원회 스위스 대표 등 스칸디나비아 이웃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에는 100여가구 300여명의 스웨덴인이 거주하고 있다.

박현영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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