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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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어권에서 중국은 일반적으로 '차이나(China)'로 불린다. 반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중국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키타이(Kitai)'다. 서양은 중국하면 진(秦)을 연상했고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는 '거란(契丹)'인의 나라 요()를 통해서 중국을 접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요 시대 외에도 이들 국가와 중국의 교류는 활발했다. 예를 들어 영어의 고어(古語)에서 유래한 '캐세이'는 지금도 중국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키타이처럼 '거란'에서 음차한 것이다. 발해를 무너뜨린 요는 이슬람 세력과 대규모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세계사에 대항해(大航海)시대를 연 '성(聖) 요한의 전설'을 탄생시켰다.

'성 요한의 전설'이란 12세기 무렵 서구에 확산된 것으로 이슬람 세계의 뒤쪽엔 강대한 기독교국가가 존재한다는 일종의 믿음이었다.

이는 요가 금에 패망한 후 거란족인 야율대석(耶大石)이 서쪽으로 이동해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인 사마르칸트 등에 근거하던 이슬람국가 카라 한조를 무너뜨리고 서요(西, 카라 키타이)를 건국한 1132년 이후 더욱 확산됐다. 당시 서구는 십자군 전쟁 등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슬람 국가 카라한조가 갑자기 멸망하자 이를 멸망시킨 세력은 성 요한이 지배하는 국가일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거란, 키타이는 서구와 중앙아시아에 두 가지의 얼굴을 동시에 갖고 역사에 등장했고 지역에 따라 한번 '차이나' 혹은 '키타이'로 각인된 이미지와 이름은 쉽게 바뀌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특정국가의 이미지는 이처럼 한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기가 어렵다.

광복후 한국은 대외적으로 '코리아'란 이름을 쓴다. 북한도 외부적으로는 코리아로 불리지만 그들은 '조선'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반면 재외 한국인들은 거주지에 따라 때로는 '조선족'으로 때로는 '고려인'으로 불린다.

카라 키타이가 위치했던 중앙아시아 지역과 거란의 발원지에서 멀지 않은 중국 북동부에서 요즘 한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믿음이 확산되고 있다. 성 요한의 전설이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지팡고의 전설'과 함께 대항해시대를 열어 유럽부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듯 '한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과 우리가 잘 조화를 이뤄 한국이 한국(恨國)이 아닌 가능성의 나라, 대한국(大韓國)으로 비약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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