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바로잡습니다] 5. <끝> 문화·스포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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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올림픽에서 문대성(태권도) 선수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통쾌한 발차기를 기억하십니까? 그 어느 해보다 시끄럽고 어두운 뉴스로 점철된 한 해였습니다.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면만큼은 올 한해 문 선수의 발차기처럼 밝고 속시원한 뉴스를 되도록 많이 취재해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실수나 판단착오 투성이였습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 문화 뉴스

지방서 열린 문화 행사 보도에 소홀

◆ 부산영화제만 영화제였나=기자의 첫째 임무는 현장을 지키는 일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현장을 비웠음을 고백합니다. 한국 영화의 활력소로 자리매김한 영화제는 9회째를 맞은 부산영화제 외에도 전주.부천.광주가 있었습니다.

문화부는 부산영화제에 기자 2명을 일주일간 파견해 취재하고 기사를 썼습니다. 그러나 전주.부천.광주 국제영화제는 겨우 예고 기사를 싣는 데 그쳤고, 현장 취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뿐이 아닙니다. 통영국제음악제와 대관령국제음악제도 프로그램만 소개하고 끝이었습니다. 서울과 지역의 문화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각 지방의 문화뉴스를 더 열심히 챙기고, 전국 곳곳을 기자가 발로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 오지 못한 피카소 명화=문화행사를 치르는 주최 측의 사정까지 속속들이 꿰찰 수 없는 것이 취재기자의 한계입니다. 그들이 공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가 결과적으로 오보가 난 때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씁쓸한 기분입니다. 전설적인 독일의 록그룹 스콜피언스의 내한 소식(8월 18일)은 한 달 앞서 썼으나 며칠 뒤 공연이 취소됐습니다. 그러나 본지는 공연 취소 사실을 따로 기사로 취급하지 않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평화선언 2004 세계 100인 미술가전'에 출품된다고 해 큼직하게 보도(4월 19일)했던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은 결국 프랑스 땅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올 뮤지컬계의 최대 논쟁거리였던 일본 극단 '시키(四季)'의 한국 진출(7월 27일)은 중앙 문화부의 특종이었으나 국내 여론이 들끓자 '시키'쪽이 잠정 보류의 뜻을 밝힘에 따라 맥빠진 기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방송.신문사의 연말 시상식 해체를 요구하며 불참을 선언했던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의 성명을 주요 이슈(11월 29일)로 다뤘으나 우왕좌왕하는 제작사와 가수들의 반발로 결국 불참 입장이 번복됐습니다.

◆ '인생찬란'이 '유치찬란'으로=취재나 기사 작성 과정에서 범한 잘못들도 많았습니다. '추사의 한글 편지전'(5월 19일)은 추사 김정희의 부인 예안 이씨를 연안 이씨로 잘못 써 문중 독자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시인 겸 사진가인 신현림씨의 사진전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을 '아! 유치찬란 유구무언'(9월 22일)이라고 엉뚱하게 '작명'하기도 했습니다. 11월 27일자 북섹션에 나간 소설가 이청해씨의 새 소설집 제목은 '악보 넘기는 남자'였으나 '악보 넘기는 여자'로 성을 바꾸었고, '2004 문화 키워드' 출판편에서 '단테클럽'의 판매부수는 8만부였으나 80만부로 0을 하나 더 붙이는 실수를 범해 정정기사를 내는 소동을 치렀습니다.

문화부

*** '남자'를 '여자'로 … 잘못 잇따라

노재현 문화부장

'문화'마저 사회 갈등이나 정치 바람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에서는 문화를 어떻게 향유하는지 본보기가 될 만한 곳들을 들여다 본 '이웃문화'나 마음이 열린 종교인들을 다룬'한 지붕 두 종교'시리즈도 그래서 기획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는 않더군요.

연초부터 총선을 앞두고 TV 방송이 '편파' 논란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중앙일보는, 그중에서도 특히 문화면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엄정히 비판하되, 이른바 '코드 비판'이 '또 다른 코드'로 치부되지 않게끔 세심히 주의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쉬운 대목이 너무 많습니다. 온다던 피카소 작품은 오지 않았고, 책 제목의 '남자'가 '여자'로 둔갑하는 등 크고 작은 잘못이 이어졌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정중히 약속드립니다. 내년에는 한층 열심히, 더 정성들여 지면을 만들겠습니다.

*** 스포츠 뉴스

양키즈 간다던 구대성 아직도 …

◆ 잘못되고 편향된 예측=스포츠 분야에서는 불가피하게 예측 기사를 써야할 일이 빈번히 생깁니다. 중요한 경기의 승부, 걸출한 선수의 진로 등을 전망해야할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오보도 발생합니다. 부정확한 취재나 편향된 예단이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아직 가타부타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구대성 선수 뉴욕 양키스 행'보도도 그런 종류입니다. 12월10일자 11면에 구 선수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명문 양키스에 입단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내용은 '9일 입단 확정, 10일 공식발표'였습니다. 중앙일보를 포함해 국내 모든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지만 10일 발표는 없었습니다. 구 선수의 에이전트가 전해준 말을 그대로 믿고 보도한 것이었습니다.

이어 11일자에서 '구대성 신체검사, 발표는 단장 만난 후 15일께'라는 속보를 썼습니다. 그러나 15일에는 물론, 23일 현재까지 발표는 없었습니다. 물론 구 선수의 입단 절차가 여전히 진행중이긴 하지만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을 구단이 아닌 에이전트의 말만 믿고 확정적으로 쓴, 성급한 기사였습니다.

아테네 올림픽 때는 사격에서 한국 선수들이 만점을 기록한 적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금메달 가능성'을 강력히 예측했지만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보니 다른 나라에도 연습이나 대회에서 만점을 기록한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우물안 개구리'식 보도였던 셈입니다.

◆ 벗지 못한 스포츠 내셔널리즘=민족 내지는 국가주의 색채가 강한 보도 태도는 올해도 나타났습니다. 아테네 올림픽 체조 경기에서 심판의 오심으로 동메달에 그친 양태영 선수에 대한 일련의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이른바 '스포츠 세계대전'의 전쟁터에서 남의 나라에 빼앗긴 금메달을 찾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오심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우리 선수단의 대처는 적절했는지(즉각적인 항의와 규정에 따른 신속한 이의 절차 수행 미흡)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은 분명히 부족했습니다.

또 공동 금메달 수여를 추진한다든가, 금메달리스트인 폴 햄(미국)에게 메달 양보를 요구하는 국제체조연맹 회장의 서한 등 한국선수단에 유리한 내용을 강조해서 보도했고, '판정 번복이 힘들다'는 국제체조연맹의 입장이나 '양 선수가 금메달을 되찾는 건 힘들다'는 외신 보도는 상대적으로 작게 취급했습니다. 결국 양 선수의 '금메달 되찾기'는 좌절됐습니다.

◆ 확인 미흡, 부주의가 자초한 실수=MBC라온건설 인비테이셔널 골프경기에 타이거 우즈가 부인과 함께 방한한다고 보도한 것은 오보였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스포츠마케팅업체의 공식 발표였긴 했지만 그 내용을 검증 없이 옮긴 보도는 결과적으로 실수였지요.

올림픽 기사 중에는 이란을 아랍 국가라고 쓴 경우가 있었습니다. 회교 국가와 아랍 국가를 혼돈한 결과였습니다. 이란 대사관의 항의를 받고 정정 기사를 내야 했습니다.

11월 30일자 25면 '박태환 경영 월드컵 1500m 은메달' 기사에서는 엉뚱한 사람의 사진이 게재됐습니다. 박 선수가 국내에 없어서 본인의 홈페이지에 뜬 사진을 다운받아 썼는데 알고보니 박 선수의 선배 사진이었던 것이지요.

'오늘의 경기'를 안내하면서 장소와 시간을 잘못 기재해 경기장에 갔다가 허탕친 독자의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스포츠부

*** 독자 꾸지람 기다리겠습니다

김석현 스포츠부장

고품격의 재미, 다채로움과 깊이. 올 한해 중앙일보 스포츠부의 모토였습니다. '경기 상보 위주의 중계식 보도를 피하고 가공의 묘미를 살리자. 스포츠 애호가들께는 더 깊은 조예를 선사하고, 비전문가들껜 친근하게 접할 스포츠 세상을 보여드리자.'

톱 골퍼 박지은 선수가 쓰는 '골프야 놀~자', 순수 아마추어들의 레포츠 활동을 소개한 연재 '스포츠가 좋다', 달리기 가이드를 위한 시리즈 '행복한 달리기', 스포츠 스타들의 살아가는 얘기와 사연을 담는 토요기획 '스타산책', 아테네 올림픽에 맞춰 연재한 '올림픽 알아야 더 재밌다' 등도 그런 정성의 산물이었습니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의 '인사이드 피치'는 필자의 미국 연수 중에도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고급스러운 입맛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 어땠는지는 한마디 꾸지람과 격려로 알려주십시오. 더 격조 있고 좋은 지면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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