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동의 중국世說] 한국전쟁 60년과 중공군 개입의 회고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월 25일은 세계 최대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50.6.25. 04시 북녘의 반 민족적 소 영웅주의자들과 공산혁명 수출의 수괴 스탈린에 의한 남침으로 평온하던 한반도는 청천벼락에 진동했고, 그리 곱던 신록의 산하는 꽃다운 청춘들의 피로 물들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낙동강까지 밀렸던 한국군은 미국과 유엔의 신속한 지원에 힘 입어 압록강까지 진군, 통일을 눈 앞에 두는 듯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전은 처절하고 지루한 공방전 끝에 결국 53.7.27 휴전을 맞게 된다.

중국 마오저뚱은 소련 스탈린과 교감 하에 “自衛와 抗美”라는 명분으로 1950.10. 25부터 53.7.27 휴전시까지 한국전쟁에 230만 병력을 파견, 한국의 통일을 방해하고 현재의 한반도 분단 고착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중국은 1950.11.4 “항미원조 국토방위에 관한 전국 각 민주당파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중국인민의 항미전쟁은 나라의 절실한 이해관계에 직결되어 있으며, 조국을 방위하기 위해서는 조선인민을 돕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적고 있다. 물론 중공군의 실제적인 한국전 개입 이유에는 지정학적인 순망치한의 방위론 이외도 많은 복선이 깔려 있었다. 즉 소련으로부터 무기 획득, 경제난에 직면한 국민들의 원성에 대한 국면전환, 국공내전 때 북한군의 지원에 대한 보답, 미국의 대만 방위태도에 대한 불만 등 복합적인 이유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중공군의 개입은 부분적이고 단순한 병력지원이 아니었다. “공산혁명의 세계화”라는 스탈린과 마오쩌뚱의 신념이 지배한 이념전 성격이 강해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 장기전의 지원이었다. 중공군은 3년여 전쟁기간 중 2년 8개월 동안 한국전쟁의 전선을 유지하는 공산측 전투력의 주력군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휴전협정의 타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한국전쟁 종결 편까지 주연 배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중공군은 53년 7월 휴전 이후에도 58년 까지 약 25만 명의 병력을 북한에 주둔시켰다. 이런 사실들은 오늘날 중국이 북한의 2차 핵실험 강행, 3대 부자세습, 천안함 만행 등의 작태를 보고도 눈을 감거나 희석하는 저의를 짐작하게 한다.

한국전쟁에서 우리는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부분이 있다. 당시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50.1.12 “서태평양에서의 미국 방위는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그 외의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우선 공격을 받은 국민의 저항으로 대비한 다음 전체 문명세계가 개입한다” 고 밝혔다. 이는 한국이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되었다는 인식을 주어 김일성과 스탈린 등의 오판을 야기했다. 애치슨은 공산세력의 세계적화 야욕과 이 야욕실현의 주된 수단은 전쟁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한 인물들이 일국의 국정을 수행하면 엄청난 세계적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준엄한 역사의 교훈이다. 마오쩌뚱은 김일성에게 6.25 발발 1년 전부터 한반도 유사시 군대지원을 시사했고, 6.25 발발 한달 전에는 미군 개입 시 군대파견을 확약했던 것이다.

한편, 중공군 개입과 관련하여 맥아더 장군은 “중국 동북지방을 폭격해서라도 공산군을 격퇴하고 한국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유럽의 확전반대 여론을 의식한 데다 소련의 참전으로 3차대전이 발발할 것을 우려하여 맥아더를 해임 조치하고 휴전을 서둘렀다. 이를 두고 많은 군사 전략가들은 맥아더 원수의 전략이 옳은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만약 미국이 중국 만주지방을 공격했어도 당시 핵무기가 없던 소련과 중국은 미국의 핵무장에 대항할 수 없고, 2차 대전 등에 혼이나 3차 대전을 기피할 상황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전쟁도 정치의 또 다른 수단이며, 국가원수는 전쟁과 평화의 최종 책임자라는 점에서 천재 전략가인 맥아더와 평화를 중시한 트루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영원한 논쟁의 명제다.

한반도의 포화는 멈춘 상태이나 북한의 핵개발과 호전성으로 인해 지금도 우리의 안보는 가시밭길의 행로를 요구 받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 최근 중국의 環球時報 등이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이다”라고 최초로 보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제 중국도 말로만 평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역사 앞에 진실해져, 대국답게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과오에 대해 정중히 사죄하고, 진정한 인류평화의 길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 주기 바란다.

한국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은 “자유를 지키는데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만이 자유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설파했다. 오늘날 우리 청년들 중에 이 명언의 의미를 깨닫고 “나는 조국의 안보와 국민의 자유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고 언급할 자가 과연 몇이나 될는지 우려가 앞선다. 특히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천안함 사건과 “한국전쟁 60년”에 대해 결의안과 성명을 발표하는 데, “대북규탄결의안”을 3개월이 넘어 겨우 채택한 우리 국회의원들과 그 자녀들의 안보관이 자못 궁금하다.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