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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평가전 안팎의 善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축구황제 펠레는 한국 축구를 가리켜 "컨트롤도 없이 공만 보고 바쁘게 뛰어다닌다"고 논평한 적이 있다. 엊그제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을 지켜본 축구팬들 입에서 '한국 대표팀이 맞느냐'는 감탄들이 쏟아졌을 정도로 우리의 세트플레이는 환상적이었다. 게다가 빠르고 파워풀한 공격, 신속한 문전 처리,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중거리 슛, 악착같고 당찬 밀착수비 등은 예전의 한국 축구가 아니었다. 물론 이 경기는 승패에 연연않는 평가전이었고, 후반 들어 잉글랜드의 주전들이 대거 교체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모습은 '히딩크호에 한방 맞았다'는 영국 언론의 표현만큼이나 확 바뀌었다. 이는 히딩크 감독 특유의 축구 경영의 일차적 수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체력과 스피드를 최우선시하고 '지옥훈련'을 통해 한국 축구를 유럽팀 수준으로까지 올려놓았다. 선수 선발에서 과거의 명성과 전력에 아랑곳없이 많은 선수를 경기에 투입하면서 시험을 거듭했다. 모두가 공격과 수비에 가담하는 '토털축구'로 시스템을 짜고 선수 23명을 모두 멀티포지션 소화능력을 갖추도록 만든 결과다.

그러나 아직도 정교하지 못한 플레이, 미숙한 볼 컨트롤, 단조로운 공격루트 등 보완 과제 또한 적지 않다. 이 멋진 한판의 무승부를 계기로 16강에의 가능성과 자신감은 높아졌지만 자만하거나 과잉기대는 금물이다.

이번 평가전에서 대표팀의 선전(善戰) 못지 않게 관중들의 응원자세와 차량 2부제 운영 등 경기장 안팎에서의 시민의식 또한 성숙함을 보여줘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는 역량과 자신감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진용을 발표하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그의 축구 경영은 이미 세계를 반쯤 놀라게 했으며, 앞으로 대표팀의 성적은 물론 '경기외적 월드컵'에서도 유쾌한 이변(異變)이 계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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