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반외교 "北 부시2기 출범전 6자회담 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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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22일 본지와 송년 단독인터뷰를 했다.이날 오후 외교부청사 17층 대접견실에서 마주한 반 장관은 활기찬 모습이었다.자리에 앉으면서는 “올 한해 98일간 해외에 나가 총 30개국을 돌아다니며 외교장관 회담만 76차례를 했는데 아마 역대 최고 기록일 것이다.

외국 같으면 집에서 벌써 쫓겨났을 것”이라며 웃었다.평균 수면 시간을 묻자 “5시간반에서 6시간 정도 잔다.올 한해 일요일에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며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다”고 회고했다.그러면서 한ㆍ미관계,북핵 문제,대중ㆍ대일관계,외교부 혁신 등 각종 현안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외교부 혁신 문제를 얘기할 때는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다음은 주요 현안별 문답.

◇한ㆍ미관계

-한ㆍ미관계의 현 주소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올해 양국은 아ㆍ태경제협력체(APEC) 때 정상회담을 비롯해 3차례에 걸친 정상간 전화통화,5번에 걸친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 등 활발한 대화를 나눴습니다.이를 통해 주한미군 감축,용산기지 이전,이라크 파병 등 주요한 동맹 현안을 원만하게 해결해 한ㆍ미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입니다.지금 한ㆍ미관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는 게 양국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관계가 좋아졌다면 그 배경은 뭡니까.

“무엇보다 지난달 20일 열린 한ㆍ미 정상회담이 중요했습니다.이를 통해 부시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ㆍ미관계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확립할 수 있었어요.좀더 길게 보면 199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 우리의 경제적 여건이 향상되고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자긍심도 높아졌고,무엇보다 미국내에서도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한국이 상호 호혜적이고 좀더 수평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게 정당하다는 인식이 미국내에서 높아지기 시작한 거죠.2002년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한때 반미감정과 혐한감정이 분출됐지만 이 또한 한ㆍ미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양국의 생각이 일치했습니다.”

-향후 한ㆍ미관계 발전 구상은.

“내년에도 한ㆍ미관계를 보다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동맹관계로 발전시키는 데 외교정책의 우선 순위를 둘 작정입니다.기존의 대화 채널뿐 아니라 양국 외교차관급 고위전략대화와 한ㆍ미 안보정책구상회의(SPI) 등을 통해 양국간 대화의 폭과 깊이를 더욱 확대해 나갈 생각입니다.또 안보 문제에만 중점을 뒀던 과거 양국 관계의 지평을 보다 넓혀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의 협력을 더욱 심화시켜 나갈 방침이에요.이를 위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지명자가 본격 취임하는 대로 최대한 빨리 제가 워싱턴에 가서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을 할 계획입니다.미국과도 그렇게 합의가 됐어요.”

◇북핵 6자회담

-북핵 문제가 여전히 교착상태입니다.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6자회담 참가국들과 고위급 및 실무급 차원의 빈번한 셔틀외교를 통해 6자회담의 조기 개최 및 회담 진전방안에 대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정동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도 현재 중국을 방문해 이 문제를 논의 중입니다.정부는 창의적이고 실효성있는 방안을 계속 모색하면서 이를 위한 ‘선도적’역할을 계속해나갈 계획이에요.”

-북한은 ‘미국이 먼저 유연성으로 보이라’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미국도 최근 북측과 2차례에 걸쳐 뉴욕접촉을 가졌지만 미국의 입장은 확고합니다.북한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회담장에 나와서 논의해야 하고,회담 재개 전에 기존 입장을 변경할 수는 없으며,하지만 회담이 열리면 진지하게 협상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죠.북한은 아마도 일단 부시 2기 행정부 취임식을 지켜보자는 입장인 것 같은데,단언컨대 아무리 따져봐도 취임식 이전에 대화 테이블에 나오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봅니다.그래야 그들 체면도 지켜질 수 있을 거예요.”

-북한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할 것으로 봅니까.

“북한이 꾸준히 개혁ㆍ개방을 시도하고 있고 6자회담에 계속 참여한다는 기본 입장은 유지하고 있는 만큼 큰 틀에서 볼 때 6자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북한으로서도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개혁ㆍ개방에 필요한 국제사회의 안전보장과 지원을 받을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또 모든 나라가 북한의 핵무기는 용납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죠.따라서 북한이 궁극적으로는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봅니다.하지만 무엇보다 농축우라늄 핵개발 프로그램(EUP)의 폐기에 관한 북한의 결단이 중요합니다.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이 이같은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밝힌 일련의 북핵 발언이 여전히 화제입니다.

“노 대통령이 말한 내용의 골자는 ^북핵 불용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북한의 전략적 결단 필요성 ^북한의 결단을 유도하기 위한 참가국들의 환경 조성 ^우리의 ‘주도적’역할 수행 등입니다.이런 메시지는 일부분만을 떼어서 판단하기보다는 전체적 맥락에서 보는 게 중요합니다.‘LA 발언’과 한ㆍ미 정상회담 및 유럽 순방 때의 언급을 한 데 놓고 보면 나름의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한ㆍ일관계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우리 정부 입장이 미온적이란 비판이 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일본 스스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습니다.일본 정부도 여러 차례 전향적 입장표명을 해왔으나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현안이 남아있는 것 또한 사실이죠.이와 관련해 양국의 역사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역사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여기에서 객관적 진실을 밝히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 볼 생각입니다.활동 기한도 늘리고 젊은 학자들도 참여시킬 작정입니다.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도 지난주 한ㆍ일 정상회담 때 이같은 방안에 동의한 바 있습니다.”

-대북제재를 둘러싸고 한ㆍ일간에 미묘한 입장차이가 느껴집니다.

“이른바 허위 유골 문제로 일본내 대북 여론이 매우 안좋은 상황에서 대북제재 및 압력 행사 요구가 거센 게 사실입니다.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양국 정상이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한 것은 납치 문제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하지만 6자회담이 계속 지체될 경우 일본내 강경 여론이 더욱 확산될 것이며,이는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죠.북측의 결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대중국 외교
-최근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는 어떤가요.북한 체제에 관한 다양한 얘기도 나오는데요.

“지난 4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양국간 우호협력 관계가 거의 회복된 것으로 보입니다.북한 붕괴론이나 북한 체제의 안정성 여부 등에 대해서는 여러 다양한 의견과 입장이 있겠지만 제가 그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군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시정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나요.

“지난 8월 양국 외교차관 회담에서 구두양해에 합의한 뒤 중국측은 정부 차원에서 고구려사 왜곡을 중단하고 기존의 왜곡된 사항들도 시정 중에 있습니다.이후 잇단 고위급 회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원만한 해결 의지를 거듭 강조했습니다.다만 일부 왜곡 사항은 내부 사정상 시정에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요.”

◇북한인권법

-북한인권법으로 인해 대량 탈북사태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인권법이 생겼다고 해서 탈북자가 증가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미국이 이 법을 만든 동기는 순수하게 북한의 인권을 개선해야겠다는 취지였죠.북한의 체제변화를 꾀하려는 의도는 분명 없었어요.우리 정부는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는 누구나 받아들이겠다는 기존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혁신

-외교부 혁신이 올 한해 큰 화두였습니다.

“허,참….제가 아무리 어려운 업무라도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모두 감당해왔는데 가장 힘들고 괴로운 게 외교부 혁신과정이더군요.제도를 잘 고치는 것은 좋은데,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그게 참 괴롭고요….다행인 것은 예전에는 혁신이라고 하면 줄이고 축소하는 것만 의미했는데,지금은 필요한 곳은 인원과 예산을 얼마든지 늘리라는 점이죠.외교부 예산이 정부 예산의 0.6%밖에 안되는 현실에서는 참으로 한계가 많습니다.”

-현재 어떤 단계까지 논의되고 있습니까.

“지난 1일 최영진 외교부 차관과 정용덕 서울대 교수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외교부 혁신추진위가 공식 발족했습니다.현재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중입니다.이를 기초로 중앙혁신위ㆍ행자부ㆍ기획예산처는 물론 민간 전문위원들과의 협의를 거쳐 외교부 인사ㆍ조직ㆍ업무 분야의 세부 혁신방안을 내년 3월까지 확정하고 상반기 중 법제화를 마무리지을 방침입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주미대사에 내정됐는데요.

“홍 내정자가 미국의 관계ㆍ경제계ㆍ언론계ㆍ학계에 두루 교류관계가 있어서 주미대사를 통해 그런 개인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모두들 뜻밖이다,신선하다고 하는데 한ㆍ미관계를 위해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새해 목표와 전망

-2005년 한반도 외교지형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아무래도 가장 큰 변수는 북핵 문제일 것입니다.조속한 6자회담 개최를 위해 주도적인 외교력을 발휘해나갈 생각이에요.특히 한ㆍ미동맹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한ㆍ미 양국간 긴밀한 협력을 더욱 공고히해나갈 작정입니다.아울러 반테러ㆍ비확산ㆍ환경ㆍ인권 등 다양한 국제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 과정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입니다.장기적인 국익 확보와 국제적 위상 제고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겁니다.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경제ㆍ통상 분야의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을 겁니다.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와 성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내년은 한국 외교에서 너무나 중요한 해입니다.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정리=박신홍,사진=최정동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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