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제2부 薔薇戰爭제4장 捲土重來:"대사님께 전할 물건이 있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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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정년은 불상의 머리를 보면서 생각하였다. 그때 정년은 장보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하오나 형님. 아우가 이 불두를 가져가면 이 불상은 두동강이가 되어 온전한 몸이 아니라 불구의 몸이 아니겠나이까."

그러자 장보고는 대답하였었다.

"마찬가지가 아니더냐. 아우인 네가 내 곁을 떠나 군인의 길을 가겠다니 이 형도 온전한 몸이 아니라 불구의 몸인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내게 돌아오너라. 돌아와서 함께 힘을 합치자꾸나. 네가 없는 나는 머리가 없는 불상과 마찬가지니, 나는 언제까지나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부절(符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지는 사람들끼리 부신의 신표로 사용되던 부절. 그때 정년은 맹세하여 말하였었다.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우는 이 불상의 머리를 부절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겠나이다."

그 신표가 바로 이 불상의 머리인 것이다. 이 불상의 머리만 형님에게 전하여줄 수만 있다면 장보고는 이 아우가 바다를 건너 이렇게 자신을 찾아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 불상의 머리를 형님에게 전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무렵 청해진의 군영은 한층 삼엄한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해 5월 김우징이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근신을 데리고 배를 타고 청해진으로 망명하여 몸을 의탁해온 이후부터였다. 또한 한달 뒤인 6월. 아찬 예징과 아찬 양순까지 도망쳐 청해진으로 망명해오자 장보고는 전군에 명령을 내려 비상경계태세를 한층 강화하였던 것이었다.

물론 장보고는 이제껏 신라조정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을 피해 도망쳐온 김우징을 모른 채 방관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김우징과 그의 아버지 김균정은 청해에 진영을 설치할 때 큰 은덕을 입었던 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우징은 신라의 조정으로 보면 반역의 화근. 따라서 언제 신라로부터 관군이 쳐들어올지 몰라 전군에 비상사태를 선포해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년은 물끄러미 군영에 있는 장도로 들어가는 다리를 쳐다보았다. 다리 건너에는 군막이 있었고, 그 군막 앞에는 무장을 한 파수병들이 보초를 서서 오가는 사람을 일일이 검색하고 있었다.

순간 정년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불립호혈 부득호자(立虎穴 不得虎子).

이 말은 겨우 36명의 장사를 이끌고 흉노를 대패시킨 전설적인 후한의 장군 반초(班超)가 남긴 말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다'는 말로 '위험한 곳에 직접 들어가 맞닥뜨리지 않고서는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없다'는 뜻을 지닌 문장이었던 것이다. 특히 이사도의 난을 평정할 때 장보고와 정년이 언제나 정예군의 최선방에 설 때마다 되새기던 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정년은 불상의 머리를 들고 결심하였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갈 수밖에 없듯이 형님을 만나려면 저 군영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년은 다리 위를 걸어 군막 앞으로 다가갔다. 군문을 지키고 있던 근위병이 정년이 다가오자 창과 칼을 들어 길을 막고 소리쳐 말하였다.

"게 섰거라, 넌 누구냐."

정년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대사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군병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년을 노려보았다.

"무엇 때문에 대사님을 만나려 함이냐."

"전해드릴 물건이 있어서이나이다."

"그 물건이 무엇이냐."

군병이 묻자 정년은 들고 있던 불상의 머리를 내밀었다. 그 물건을 받아본 군병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정년에게 소리쳐 말하였다.

"이것은 한갓 돌덩어리가 아니더냐. 이놈이 지금 여기서 한갓 장난질을 치고 있단 말이냐."

군병은 그 불상의 머리를 힘껏 손을 치켜들어 바닷물 속으로 집어던지려 하였다. 순간 정년의 몸이 바람처럼 날아 군병의 손에 들린 불상을 빼앗는 한편 군병의 몸을 일격에 쓰러뜨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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