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제2부 薔薇戰爭제4장 捲土重來:품에서 신표 꺼내든 정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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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초라한 사내가 당나라의 화폐인 개원통보를 꺼내자 술청어멈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 사내가 중국에서 온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면 행색은 비록 남루할지라도 품속에는 노자가 가득할 것이다.

"당나라에서 오셨소."

"그렇소이다."

당나라의 창업을 기념하여 만들었던 개원통보는 역대 왕조의 표적이 되었던 동전으로 당시 청해진에서는 웃돈을 주고 사용되던 오늘날의 달러와 같은 국제화폐였던 것이다.

"그러면 장사를 하러 오셨소이까."

그러자 사내는 씁쓰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오셨소이까."

사내는 대답 대신 술잔의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비록 행색은 남루했지만 기골이 장대해 훤칠한 장부의 모습이었다. 입가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씻어 내리고 나서 사내는 단숨에 말하였다.

"청해진의 대사 장보고를 만나러 왔소이다."

믿거나 말거나 할말은 해야겠다는 듯 사내는 빙그레 어멈을 향해 웃어 보였다. 사내의 입에서 장보고의 이름 석자가 흘러나오자 어멈은 흠칫 놀라며 물어 말하였다.

"대사님이야 이곳에서는 나랏님이오.그런데 어찌하여 대사님을 만나려 하시오."

"대사님이 바로 이 사람의 형님이오."

사내는 다시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이 사람이 지금 술에 취해 술 주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유심히 얼굴을 살펴보았으나 술 취해 농짓거리를 하고 있는 표정도 아님이었다.

"그렇다면 장대사를 만나기 위해서 당나라에서 건너오셨단 말이오."

술청어멈이 다시 되물었다.

"그렇소이다.장보고 형님을 만나러 오기 위해서 바다를 건너왔소이다."

사내는 분명히 대답하였다.

사내의 대답은 사실이었다.

의형제인 장보고를 만나기 위해서 바다를 건너 고향 청해진으로 돌아온 사내. 그 사내의 이름은 정년이었던 것이다. 일찍이 적산법화원에서 함께 제대하여 장사를 하자던 장보고의 권유에도 장사는 천민들이나 하는 것이고,자신에게는 무인의 길이 맞는다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군문에 남아있었던 정년.그 정년이 마침내 장보고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이에 대해 두목은 『번천문집』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어느날 정년은 연수현의 수장 풍원규(馮元規)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동으로 돌아가서 장보고에게 걸식(乞食)하려 한다.'

이 말을 들은 풍원규가 대답하였다.

'자네와 장보고의 사이는 어떠한가. 어찌하여 가서 장보고의 손에 죽으려 하는가.'

그러자 정년이 말하였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것은 전쟁에서 깨끗하게 싸우다 죽는 것만 못하다. 하물며 고향에 가서 죽는 것에 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나서 정년은 장보고를 찾아 떠났다.

두목이 『번천문집』에서 기록한대로 '타향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향에서 싸우다 죽는 것이 낫다'고 결심하고 돌아온 고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로 가서 장보고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형 장보고는 그동안 술청어멈의 말대로 청해진에서는 나랏님보다 더 귀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정년은 어리둥절해하는 어멈을 뒤로하고 육전을 나왔다.

어멈이 가르쳐준대로 장보고가 머무르고 있다는 장도의 군영은 석양빛을 맞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정년은 품속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형 장보고와 헤어진 후 십수년 동안 한시도 품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있었던 신표였다.

일찍이 법화원에서 법회를 열었던 낭혜화상이 준 불상.그러나 그 불상은 불두와 몸체가 따로 떨어져있던 불구의 몸이 아니었던가.몸체는 장보고 자신이 갖고 불상의 머리는 정년에게 내어주면서 장보고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이것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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