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부처님'의 쏠쏠한 인생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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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일본에서 1백50만부가 넘게 팔렸다는 『부처와 돼지』는 네 칸 또는 여덟 칸 안에 삶의 진실을 압축해 보여주는 만화책이다. 석가탄신일 즈음이면 줄줄이 나오는 만화·그림책·동화책들이 대개 싯다르타의 탄생과 깨달음에 관한 전기적 구성을 위주로 고만고만하게 다루는데 비해, 이 책은 보다 근본적인 불교철학의 문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만화 형식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초등학생들에겐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무게가 있다. 중·고생이나 성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접해도 좋을 법하다는 판단은 그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셋이다. '안내인'일 뿐이라며 시원스레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는 부처와 삶의 문제에 이리저리 방황하는 평범한 돼지들, 그리고 독자 자신이다. 왜 하필 돼지가 주인공일까? 옮긴이는 "일본어로 부처는 '붓타(ぶった)'이고 돼지는 '부타(ぶた)'다. 처음엔 이 비슷한 발음 때문에 불교 만화의 주인공으로 돼지가 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만화를 읽으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탐욕의 화신인 돼지,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돼지, 그 돼지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하는데, 충분히 공감이 간다.

사랑에 괴로워하고 직장 상사의 처사에 분노하며 남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망에 휘둘리는 '덜돼지'(덜 된 돼지?)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자아에 눈뜨는 길을 안내하는 1권 『우리는 모두 돼지』는 그 자체로 완결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2권 『있는 그대로 좋아』와 3권 『아무일도 아니야』는 1권의 인기에 힘입어 나온 속편격. 인간관계와 감정의 조절, 부나 명예의 의미 등에 대해 성찰해 보고 결론적으로 '지금, 이곳 그리고 나'의 삶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간결한 그림과 글 속에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미대 출신으로 광고계에서 일했던 저자 고이즈미 요시히로(49)의 경력 덕분인 듯 싶다. 그는 불교미술연구를 하다가 동양철학에 흥미를 느껴 책까지 내게 됐다고 한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점일 뿐이다. "이 책은 도로표지판이나 지도 같은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걸어가는 것은 당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운전하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이 책은 운전의 마음가짐을 써놓은 것입니다. 운전 방법 자체는 없지만 비전을 손에 넣으면 자연히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마음입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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