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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스마트 혁명 중 ① 공간을 극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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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보기술(IT)은 우리의 삶을 ‘스마트(Smart)’하게 만든다.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듯이 IT는 이제 ‘디지털 동네’ 안의 발전을 넘어 다른 산업이나 일상생활과 융합하면서 ‘스마트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똑똑한 IT’다. 정보통신산업(ICT)이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돕다가 사람과 사물을 이어주더니 이제 사물과 사물 간의 지능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인간 소통을 촉진하기 시작했다.

원격 무선기술의 발달은 ‘사물 간 통신(M2M, Machine to Machine)’의 등장을 초래했다. 영국 런던에서 유행하는 ‘스트리트 카’ 프로그램처럼 스마트폰과 차량이 알아서 소통하는 시스템 덕분에 사람은 의사결정만 해주면 편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센터포인트에너지 전력회사가 정전 발생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똑똑한 전력 공급망인 ‘스마트 그리드’ 구축이 목표다. [센터포인트에너지 제공]

◆교통과 의료=‘M2M 통신’ 개념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분야는 우선 교통정보 시스템이다. 런던은 스마트 교통시스템으로 자동차 통행량을 1980년대 중반 수준으로 되돌렸다. 도로·교량·교차로·표지판·교통신호·톨게이트 등 도시 전체 교통 체계에 IT를 활용한 스마트 칩을 심어 교통정보를 실시간 서비스한 덕분이다. 싱가포르에서는 M2M 센서로 실시간 교통 데이터를 수집해 정확도 90%의 교통량 예측 서비스를 제공한다. IBM 싱가포르 지사의 테레사 임 이사는 “스마트 교통시스템을 적용하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도시 전체의 교통 체계가 유기적으로 움직여 효율적 통행 관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 혁명은 의료 분야에서도 성과가 두드러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서쪽으로 2600㎞쯤 떨어진 ‘트리스탄 다 쿤차’는 육지에서 배를 타고 일주일 가까이 걸리는 남대서양의 외딴 섬이다. 큰 병원이나 대단한 의료진이 없는데도 주민은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위성통신으로 원격 지원되는 전자건강기록(EHR)을 육지의 일류 의료진이 점검하고 섬 주민에 진단·진료·응급 원격서비스를 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스마트 헬스케어’를 선진국들은 근래 앞다퉈 도입한다. 덴마크에선 원격 측정 기능을 갖춘 장비를 통해 각 가정의 고령 환자를 실시간 모니터링해 예기치 못한 응급 상황 자체를 줄인다. 스페인에선 통합 의료기록 시스템을 구축해 지역 내 병원 의사들이 환자의 최신 의료 기록을 열람하고 더 정확한 치료와 처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뉴욕의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객장에서 주식중개인이 고함을 지르며 주식매매를 하는 관행이 가장 늦게까지 남은 거래소였다. 하지만 200년 넘는 이런 거래 전통은 전산화 추진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이미 이 거래소 상장 주식의 70%가 인터넷을 통해 빛의 속도로 거래되고 있다. 앤드루 바흐 NYSE 네트워크센터장은 “주식거래가 주니퍼네트웍스의 초고속 네트워크 망 기술을 지원받아 거의 실시간 온라인으로 이뤄진다”고 전했다. NYSE는 더 빠른 주식거래를 지원하려고 5억 달러를 들여 미국 뉴저지주와 영국 런던에 최첨단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그린 IT’=영국 최대 통신회사 BT의 런던 뉴게이트가 본사(BT센터)는 직원 책상이 정해져 있지 않다. 출근할 경우 공용인 ‘핫(Hot) 데스크’에서 일한다. 영국 내 10만5000여 명 임직원 중 87%는 ‘유연근무(Flexible working)’를 한다. 업무상 필요한 곳으로 출근해 일한 뒤 현장에서 퇴근한다. 오로지 재택근무만 하는 1만4700여 명은 회사에 나올 필요도 없다. 이들에게는 광대역 인터넷 통신이 가능한 IT 설비를 설치해 주고, 책상과 의자 등 가구 구입비 명목으로 600파운드(약 100만원)를 지원한다. 또 전기·가스·수도비 명목으로 매년 100파운드(약 17만원)를 보조한다. 얼굴을 보고 할 이야기가 있으면 화상회의를 한다. BT 모빌리티 마케팅부문의 팀 호킨슨 책임자는 “유연근무를 택한 직원의 업무 생산성이 사무실 근무자보다 20% 정도 높게 나왔다. 연간 7억5000만 유로(약 1조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부서원 10여 명도 가까워 봤자 런던에서 150㎞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일한다. 몇몇은 프랑스 파리와 인도 뭄바이 근무자다. 그는 “BT에서 유연근무와 재택근무 등으로 인해 출·퇴근 때 길거리에 쏟아 붓는 차량 연료비를 절감하는 액수는 연간 1000만 파운드(약 174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스마트 혁명이 에너지를 절감하는 ‘그린 IT’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런던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다른 회사는 사무실을 임시 폐쇄해 직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BT는 별 차질 없이 일을 처리했다.

‘그린 IT’ 스마트 혁명은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기술로 도약기를 맞았다. 정보를 여러 군데 입력하는 대신 중앙컴퓨터에 모아놓고 ‘구름(cloud)’에 비유되는 가상 서버에서 언제 어디서나 꺼내 작업할 수 있는 서비스다. 런던 남쪽 레인스파크 인근의 고용전문 컨설팅업체인 리드(REED)가 좋은 본보기다. 이 나라 최대 구인·구직 알선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 회사에선 컨설턴트와 일반 직원 등 총 3500여 명이 얼마 전까지 4000대의 데스크톱으로 일했다. 인터넷 접속 속도가 느려지는 등 수시로 문제를 일으켰다. 더구나 이들 시스템을 유지·관리하는 비용이 연 50만 파운드(약 8억7000만원)에 달했다. 대당 소비전력이 185W이고 기기를 냉각하는 비용만 연 25만 파운드(약 4억3000만원)였다. 그러다 미국 시트릭스의 클라우딩 컴퓨팅 시스템을 도입해 업무 처리를 효율화했다. 직원들은 ‘신클라이언트(Thin client)’라는 모바일 기기를 들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서버에 접속해 일한다. 신클라이언트란 여러 기능을 빼고 서버에서 기능을 가져다 쓰는 ‘다이어트 노트북’이다. 리드 IT 서비스 부문의 션 휘스턴 책임자는 “연간 20%의 IT 지원 비용이 절감된다. 전력 소모도 크게 줄어 연간 2500t의 이산화탄소 절감 효과를 본다”고 설명했다.

그린 IT 기술은 빌딩 관리 시스템에도 효과적이다. 각종 센서와 효율적 전력 배분 덕분에 전력 소모를 최소화한다. 프랑스 파리 서쪽 외곽의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이 기술을 이용해 에너지 관리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빌딩·병원·사무실 등에 IT 기술을 이용해 에너지를 절감하는 쪽으로 시공해 주면서 연간 158억 유로(약 23조원)의 매출을 올린다. 이 회사의 사옥은 그린 IT 빌딩의 순례지가 됐다. 베호니크 몽탕 홍보실장의 사무실은 각종 센서로 무장했다. 기자가 들어서자 햇빛의 조도를 감안해 사무실 안쪽부터 불이 들어왔다. 햇빛이 강렬하면 자동으로 블라인더가 내려온다. 방을 나서면 조명이 꺼진다. 층마다 전기 소모량을 알리는 미터기가 설치돼 매달 에너지 최소 소비 부서를 선정해 포상한다. 그는 “빌딩 자동화 시스템으로 30%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연간 14만t의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 = 이원호(미국), 박혜민(중국·일본), 심재우(영국·프랑스), 문병주(스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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