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왼쪽 공격수 이천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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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야구엔 박찬호 등 월드스타가 많은데 축구엔 차범근 감독 이후에 없다. 화가 난다. 월드컵을 발판삼아 월드스타가 되겠다."

이천수(21·울산 현대)는 당돌하다.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머리, 똘망똘망한 눈매를 치켜뜨곤 거침없이 말을 쏟아낸다. 선배 앞이라고 기가 죽거나 봐주지도 않는다. 부평고 1학년 시절 3학년 선배와 몸싸움을 벌이다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사건'을 저질렀다. 당장 집합이 걸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반칙도 축구의 기술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혼을 내시면 어떻게 운동합니까"라며 대들었던 그다.

그는 영리하다.

부평고 시절 코치였던 임종헌(현 부평고 감독)씨는 "언제 튀어나가고 멈춰야할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은 나도 질릴 만큼 빨랐다. 축구 센스는 천부적"이라고 전했다.

이천수는 "'축구선수는 단순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 정말 불쾌하다. 벤치 지시 없이 선수 스스로 모든 걸 결정해야 하지 않느냐. 축구만큼 머리가 좋아야 하는 종목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월드컵 이후 해외진출 여부에 대한 질문엔 "이미 유럽팀들과 접촉하고 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해주겠다"며 은근히 언론플레이도 할 줄 안다.

그는 날렵하다.

1백m를 11초대에 끊는다. 그냥 빠른 게 아니라 순간 스피드는 가위 폭발적이다. 그의 고교 은사였던 조정구 감독(현 경찰청 감독)은 "천수의 플레이는 가끔 나도 읽을 수 없었다. 공을 쫓을 땐 동물적인 본능만이 꿈틀거렸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려대 조민국 감독은 "칼을 제대로 뽑고 쓸 줄 아는 사무라이와 같다고 할까. 워낙 발목이 좋다. 발등과 안쪽·바깥쪽에 정확하게 볼을 갖다 댄다. 전광석화 같은 슈팅도 이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독종이다.

지난 12일 실시된 마지막 체력훈련 '20m 왕복달리기'에서도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대표팀 허진 미디어담당관은 "체력이 강하기도 하지만 죽어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최후까지 체력테스트를 한다면 마지막에 남는 사람은 분명 천수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는 본래 오른발잡이다. 대표팀에 왼쪽 날개가 마땅치 않아 히딩크 감독이 왼발도 잘 쓰는 그를 기용하자 죽어라 왼발만 썼다.

당연히 주전 왼쪽 공격수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만만치 않다. 안정환도 왼쪽 윙에 눈독을 들이고 황선홍도 사이드가 편하다고 한다. 그가 미니 게임 때마다 기를 쓰고 골을 넣고 악착같이 돌파하는 것도 이런 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선배에게 선선히 양보할 그가 아니다. 이천수는 승부사다.

서귀포=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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