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 벗으면 마피아 전문가 :안과의사 안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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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그는 다만

진실이 알고 싶었다.

세계 최대 폭력조직

그 이면은 무엇일까.

연구를 시작한 지 6년

책 두권을 냈다.

오늘도 그는 10권의

시리즈를 쓰기 위해

환자들이 돌아간 후

인터넷과 책을 뒤진다.

저녁 8시. 병원의 실내등이 하나 둘씩 꺼지고, 문을 잠그고 나간 간호사의 또박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계단 끝으로 사라질 무렵. 안혁(安爀·40·사진) 글로리안과 원장은 흰색 가운을 벗고 자리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한다. 이제 그는 안과의사가 아니다. 미국의 지하경제를 주무르는 마피아의 모든 것을 파헤치는 전문연구가로 변신하는 것이다.

1999년 『마피아 - 미국 조직범죄의 1백년역사』를 펴낸 그는 최근 『마피아 히트』(골든북)를 출간했다. 병원 운영하랴, 새 병원 개원 준비하랴 바쁜 상황에서도 3년 만에 두번째 책을 냈다. 이 책은 마피아가 연관된 살인 사건을 사례별로 다루고 있다. '히트'란 살인을 뜻한다. 특히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의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을 마피아가 사실상 주도했다는 세간의 의혹을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통해 세밀히 풀어냈다.

"안과 의사와 마피아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단지 진실이 알고 싶을 뿐입니다. 엄연히 지하 경제가 존재하고 그곳을 지배하는 세력이 있는데 대부분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죠. 연구하는 사람이 없기에 제가 나선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과 셜록 홈스가 등장하는 번역본을 눈에 띄는 대로 사서 모았을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마피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0년대 초 한 일본인이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과 마피아의 연관에 대해 쓴 『2039년의 진실』이라는 책을 읽고부터. 2039년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 관련 파일이 공개되는 해다. 그는 "미국 대통령을 암살할 수 있는 조직이란 과연 어떤 힘을 가진 곳일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려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후 전문의 생활을 시작한 96년부터 연구에 들어갔다. 주로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을 통해 자료를 모았다. 하지만 외국 책들은 특정 인물을 서술한 수준에 불과했다. 전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이책 저책의 자료를 꿰는 '퍼즐 맞추기'를 해야 했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의 동기와 결과가 이토록 단순 명쾌하게 설명되는 곳도 없습니다. 바로 돈의 세계지요. 현대 자본주의도 뒤집어보면 마피아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마피아를 그린 영화들은 그가 책에서 얻지 못한 새로운 영감과 재미를 주었다. '대부'시리즈를 얼마나 보았는지 셀 수조차 없다. 하지만 많은 영화, 예를 들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나 '워터 프런트'같은 것은 극적 효과를 위해 조직 범죄원들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피아가 용인되는 사회는 어떤 곳인가. 그는 케빈 코스트너가 거물 알 카포네를 잡아들이는 경찰인 엘리엇 네스로 열연한 영화 '언터처블'을 예로 들었다. "'언터처블'이란 말은 당시 알 카포네 조직에 매수됐던 시카고 시장·경찰서장·판사·의원들의 압력으로부터 코스트너 일행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마피아에게서 위협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지요."

그가 체득한 마피아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 느낌을 생생하게 받기 위해 마피아의 발원지인 이탈리아 시칠리아리섬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시칠리아어 사투리 학습서를 산 것도 그 때문이다.

"앞으로 『마피아 CEO열전』(가제) 등 총 10권에 달하는 시리즈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뒤엔 일본의 야쿠자나 홍콩의 폭력조직 트라이어드의 세계도 파헤쳐보고 싶습니다."

글=정형모·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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