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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제2부 薔薇戰爭제3장 龍虎相搏 :가혹한 내 운명이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일찍이 진평왕 원년에 하늘의 천사가 궁전의 뜰에 내려와서 임금에게 말하기를 '상제가 나에게 명령하여 옥대를 전합니다'하니, 임금이 무릎을 꿇고 받았던 천사옥대.

이 천사옥대를 지난 2년간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으면서도 이를 한 번도 풀은 적이 없었다. 옥대가 없으면 아무리 김명이 제융을 옹립하여 희강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왕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또한 설혹 김명이 제융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하더라도 이 옥대가 없으면 하늘로부터 인정받은 대왕은 아닌 것이다.

김양은 비록 승복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항상 허리에는 이 옥대를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옥대만 있다면 김우징이 아무리 자신을 의심하고 있더라도 마침내 천하를 제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구나 지난밤 김우징의 불신을 제거해줄 화근인 아내 사보가 스스로 자결하여 목숨을 버리지 아니하였던가.

나는 이제.

김양은 들길을 걸으면서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날개를 얻게 되었다. 천사옥대의 날개와 아내 사보의 죽음이란 두 개의 날개를 얻게 되었으니 마침내 훨훨 창공을 날을 수 있게 되었음이다. 김양은 중천에 뜬 태양을 쳐다보면서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2년 전 삼일천하에서 도망쳐 백률사로 숨어들 때에는 태양을 가리키면서 울며 복수를 결심하였지만 이제는 마침내 유익조(有翼鳥)가 되었음이니라."

그때였다.

들길을 따라서 한 떼의 장례행렬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경귀인(公卿貴人)의 장례식이었는지 울긋불긋한 만장이 가득하였고, 상여를 멘 사람의 장렬도 웅장하였다. 상여선두에는 방상(方相) 두 사람이 만가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노래는 김양도 잘 알고 있는 해로가였다.

일찍이 유방이 즉위하기 전 전횡(田橫)은 부름에 의하여 낙양으로 길을 떠났으나 성을 앞두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전횡의 목을 가지고 유방에게 간 부하도 곧 뒤를 따라 자결하였고, 모든 부하들도 추모하여 자살한 후 그 이후부터 전횡을 기리며 부른 노래다.

애조 띤 목소리로 상여꾼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부추 잎의 이슬은 어찌 그리도 쉽게 마르는가.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이면 다시 내리는데 사람은 죽어 한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 올까나."

그 노래를 들은 순간 김양은 아내 사보가 자살하여 죽었음을 확신하였다. 죽은 사람과 친한 사람이라도 있었는지 장례행렬은 길가에서 상여를 멈추게 하고 전(奠)을 드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서 김양은 꿈인 듯 생시인 듯 아내의 혼백이 상여 위에 앉아있음을 보았던 것이었다.

그 순간.

김양은 무릎을 꿇고 울기 시작하였다.

장례행렬이 지나갈 때까지 김양은 들판에서 통곡해 마지 않았는데, 그것은 죽은 아내에 대한 슬픔 때문보다는 문득 떠오른 낭혜 화상의 참언 때문이었다.

일찍이 김양의 사촌형 김흔과 더불어 부석사로 낭혜를 만나러 갔을 때 낭혜는 김양에게 다음과 같은 단평을 내리지 않았던가.

"계집 세 명이 반드시 너를 구해줄 것이다."

그때 사촌형 김흔은 "풀 초(艸) 세 개가 반드시 너를 구해줄 것이며, 풀 초 세 개를 통해 성(聖)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이에 김양도 다시 묻지 않았던가.

"스님 그러면 저는 계집 셋을 통해 무엇을 이루겠습니까."

그때 낭혜 화상이 내린 글씨 하나. 그것은 '세(世)'자로, 풀어 말하면 계집 셋의 간(姦)을 통해 권세를 얻는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김양은 대성통곡을 하면서 생각하였다.

아내 사보도 세 명의 계집 중의 하나이니 그렇다면 나는 천하의 권세를 얻기 위해 아직도 두 명의 계집을 더 죽여야만 한단 말이 아닐 것인가.

아아, 가혹한 내 운명이여.

그렇다. 이렇듯 난세의 간웅(姦雄) 김양의 눈물은 아내에 대한 슬픔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기구한 팔자에 대한 회한 때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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