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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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중3)군은 평소 새벽 1시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학원 외고 입시반 수업을 마치고 나면 자정 가까이 돼 집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귀가 후에도 학원 과제물 챙기느라 그냥 누울 수가 없다. 요즘엔 기말고사 준비로 잠드는 시간이 더 늦어졌다. 김군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남짓. 늘 잠이 부족하다.

잘 자야 집중력 높고 키도 커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최근 대한수면학회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평일에 중3은 6.6시간, 고1은 5.9시간, 고2는 5.6시간을 자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청소년 적정 수면 시간인 8~9시간에 한참 못 미친다. 초등학생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대구 지역 초등학생 3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수면 시간이 8시간 미만으로 만성수면 부족을 겪는 12세 어린이가 25%에 이르렀다. 10세의 수면은 8.52시간으로 스위스(9.9), 미국(9.4), 사우디아라비아(9.2), 홍콩(8.72) 등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짧았다. 초등학생의 적정 수면 시간은 9시간 반 정도다.

서정한의원 박기원 원장은 “숙면으로 뇌가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기억력과 집중력이 높아진다”며 “잘 자는 게 보약 한 첩 먹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창 자랄 때는 잠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수면 중에 성장호르몬이 집중적으로 분비되기 때문이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은 뼈와 연골의 성장, 지방 분해 등에 관여한다. 성장호르몬 분비가 왕성하면 키가 크는 것은 물론 비만 위험도 줄여준다. 하지만 무턱대고 많이 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양보다는 질이다. 잠은 1~2단계인 얕은 잠(렘수면)과 3~4단계의 깊은 잠(논렘수면)으로 나뉜다. 얕은 잠이란 의도적이지 않지만 자면서도 눈동자가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깊은 잠은 눈동자의 움직임이 없는 숙면 상태를 일컫는다. 깊이 잘 때는 뇌파가 안정되고 큰소리가 나도 깨지 않는다. 반면 얕은 잠은 주변의 작은 자극에도 쉽게 깨고 몸을 자주 뒤척인다. 자고나서도 꿈을 기억한다. 얕은 잠과 깊은 잠은 하룻밤 사이에 4~6회 반복된다.

박 원장은 “잠든 후 1시간 반가량 지나면 깊은 잠에 들게 되고 이때 성장호르몬이 낮 시간보다 4.5배 많이 분비된다”며 “그렇다고 취침 시간을 정해 두고 억지로 잠을 청하기보다 다소 늦더라도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도록 편안한 상태에서 자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찬물 대신 미지근한 물로 씻어야

여름은 밤이 짧은 데다 덥고 끈적거려 좀처럼 깊은 잠을 자기 힘든 계절이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수면 환경이 중요하다. 덥다고 에어컨·선풍기 등을 켜두면 실내 습도가 순식간에 내려가 건조해진다. 이는 자칫 감기와 같은 호흡기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온도(20~25℃) 못지않게 습도(50~60%)도 적절하게 유지시켜야 한다. 벤자민·고무나무 등 습도를 조절해주는 화분을 들여놓거나 제습 효과가 있는 숯을 놔두는 방법이 있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면 체온이 낮아져 수면에 도움이 된다.

음식은 잠자기 두 시간 전엔 먹지 않도록 한다.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픈’ 성장기엔 자기 직전까지 먹을거리를 찾곤 한다. 이때 음식을 먹으면 위와 장이 밤새 일해야 하므로 뇌와 몸의 각 기관도 쉬지 못한다. 당연히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 뿐만아니라 혈당이 높은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면 성장호르몬 분비량도 크게 준다.

잠자는 자세는 오른쪽으로 눕는 게 좋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처럼 옆으로 누워 무릎을 굽히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 허리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근육을 이완시키는 자세다. 왼쪽으로 누우면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 똑바로 누워 자면 근육이 긴장하고 심장에도 부담이 된다. 엎드려 자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잠자기 전 공포영화를 관람했거나 컴퓨터 게임, 카드놀이 등을 하고나면 교감 신경이 자극돼 숙면에 방해를 받는다. 이럴 때 이불깃이나 잠옷 깃에 라벤더를 약간 떨어뜨려 준다. 라벤더는 긴장완화와 진정효과가 있어 숙면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향이 독특하고 강해 자칫 머리가 아플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적은 양을 사용하도록 한다.

▶도움말=서정한의원 박기원 원장

<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 일러스트=장미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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