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신수종 사업에 발 빠른 투자로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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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과감하게 투자해서 기회를 선점하고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단순히 외부 규제나 법규에 대응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LG가 주도하는 ‘그린 경영’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근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 경영인들이 ‘10년 뒤 먹을거리’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며 주문한 말이다. 요컨대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쟁 기업의 전열이 흐트러져 있을 때 신수종 사업에 적극 투자하겠다는 얘기다. 세계 시장에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발 빠른 추격자)’였던 한국 기업이 이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초기 시장 진입자)’가 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향후 10년을 보면서 던진 승부수는 녹색 비즈니스다. 태양광이나 2차 전지 같은 신재생에너지, 발광다이오드(LED), 친환경 자동차, 차세대 메모리 등이 대표적이다. 바이오 기술을 적용한 헬스케어(건강의료) 사업 투자도 적극적이다. 일부에서는 이미 시장 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삼성과 LG가 대표적이다.

삼성은 23조원, LG는 20조원을 신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태양전지와 LED, 자동차용 전지 등 같은 사업 영역에서 치열한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에 2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건희 회장이 2년여 만에 경영에 복귀하면서 ‘투자 보따리’를 푼 것이다. 그린에너지 분야는 이미 투자가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태양전지 시험 생산라인을 가동했고, 삼성LED는 LED 조명과 자동차용 전장 부품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오는 2020년 매출 4000억 달러를 달성해 ‘정보기술(IT)업계 압도적 세계 1위’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LG그룹은 올해를 ‘그린(Green) 경영’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202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해 그룹 전체 매출의 10%를 그린 분야에서 달성하겠다는 ‘그린 2020’ 전략을 내놓았다. 특히 태양전지, 차세대 조명, 토털 공조, 차세대 전지 등이 핵심 분야다. 헬스케어 사업에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LG전자가 태양전지 및 차세대 조명, 지능형 전력망(스마트 그리드) 등에 주력하게 된다. LG화학은 태양전지와 LED 소재 사업, 전기자동차용 전지 기술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세계 6위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한 현대·기아차그룹은 글로벌 영토 확장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현재 현대·기아차는 미국과 중국·인도·터키·체코·슬로바키아 등에 현지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다. 현대차 러시아공장은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고 중국의 베이징 제3공장도 연내 착공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으론 ‘그린카 4대 강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13년까지 친환경자동차 개발(2조2000억원)을 포함해 고효율·고연비 엔진변속기와 경량화 소재 개발(1조4000억원) 등에 집중 투자해 향후 자동차 시장의 주요 이슈가 될 그린카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SK그룹은 2015년까지 녹색기술 연구개발 및 사업화 분야에서 ▶무공해 석탄에너지 ▶해양바이오연료 ▶태양전지 ▶이산화탄소 자원화 ▶그린카 ▶수소연료전지 ▶첨단그린도시 등 7대 중점 과제에 집중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글로벌 영토 확장에도 적극적이다.

포스코는 연초 연료전지와 자원화 사업 등 에너지 신수종 사업 분야에 3000억원을 투자하고 창립 50주년이 되는 2018년까지 녹색 신성장 산업에 17조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저탄소 철강기술 개발, 신재생에너지 사업 발굴 등 녹색성장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고 향후 과감한 투자를 진행키로 했다. 또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상사·자원개발·신사업개발 등 3대 사업을 육성해 2018년까지 매출액 2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유통·식품 등 보수적인 업종에서도 경쟁적으로 신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롯데·신세계 등이 글로벌 시장 진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중국·인도·베트남 등 신흥국가 진출을 적극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 주요 대기업이 ‘미래 먹을거리’ 분야에 투자하기로 한 자금은 줄잡아 80조원가량 된다. 태양광 산업·자동차용 전지 등 미래 에너지 산업, 헬스케어 산업과 해외 진출 등이 포함돼 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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