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 문화 정착시켜야" 천주교 사형폐지운동 이끄는 이창영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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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 천주교가 사형수만이 아니라 사형수 가족과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그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 상처를 치유하게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형제를 종신제로 바꿔 진정한 생명존중의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뜻이다.

그 첫째 노력이 지난달 20일부터 매주 토요일 명동성당 입구에서 열고 있는 '화해와 용서를 통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콘서트다. 이번 주말(11일)이 마지막 공연이나 참여 가수와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워 조만간 주말 상설 공연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천주교 내 사형 폐지 운동은 주교회의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는 이창영(41·바오로·사진)신부가 주도하고 있다.

"살인은 가해자·피해자 할 것 없이 곧바로 가정해체로 이어집니다. 그런데도 가정의 중요성을 외치는 정부마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요. 가족의 입장에서 상처를 덧나게 하고 싶지 않겠지만 진정한 화해와 치유는 그 상처의 뿌리까지 들여다 볼 때에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천주교 입장에서도 가족들에 대한 접근이 매우 조심스럽다. 현재 접촉 중인 가족은 두 가족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신부는 이런 작지만 의미있는 활동이 사형 폐지를 위한 여론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재판만 지켜봐도 사형제도가 없어져야 하는 이유가 보입니다.1심에서 사형이 내려졌으나 2심에서는 무죄로 완전히 뒤집혔지요. 범죄 사실의 유무를 떠나 법이란 게 오판의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러면서 이신부는 사형 폐지가 범죄자를 살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못박는다. 만의 하나라도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 폐지 운동은 정확히 말하면 사형제를 감형이 전제되지 않는 절대적 종신제로 바꾸자는 겁니다. 여의치 않으면 조건부도 괜찮아요. 효과를 지켜보는 거죠. 어쨌든 인간 생명을 말살하는 법이 존재하는 한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는 정착되기 어렵습니다."

이신부가 사형 폐지 운동에 앞장서게 된 배경은 신학생 시절 봉사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께 그가 처음 만난 사형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토막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당시 대구 화원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전모씨였다.

"죽음을 앞둔 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지요. 저의 힘이 너무나 미약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를 자주 접하면서 우리 사회는 범죄의 결과에만 집착하지 그 범인이 한 인간으로서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데는 인색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현재 국회에 입법청원된 사형폐지특별법안에는 국회의원 1백57명이 서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이신부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등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나 한때 '사형수'의 운명에 처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나라 사형수는 50여명으로 집계된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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