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뜨끈한 물에 온몸 푹 담그면 냄새 ‘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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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냄새의 종류는 약 50만 종에 이른다. 그중 사람이 맡을 수 있는 것은 2000~4000종 정도다. 때로는 공기의 냄새만으로도 날씨 변화를 예측할 수 있으며, 청각과 시각이 덜 발달한 갓난아기는 냄새로 엄마를 알아본다. 음식의 맛을 느낄 때도 냄새가 중요하다. 맛의 75%는 후각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뇌는 냄새에 매우 빠르고 강하게 반응한다. 공기 중을 떠돌던 냄새 분자는 콧속 가장 깊숙한 후각상피에 도달한다. 후각상피에 나 있는 섬모는 냄새를 감지해 전기신호로 바꿔 뇌로 보낸다. 후각 정보는 정서적 두뇌로 가는 직통회선이 있다.

사람 몸에서도 냄새가 난다.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체취가 있는가 하면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체취도 있다. 체취는 땀, 피지, 식생활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몸냄새는 잘 씻지 않는 게 주 요인이지만 질병을 나타내는 신호일 수도 있다.

몸냄새의 비밀은 땀샘에 숨어 있다. 땀샘에는 아포크린과 에크린 두 종류가 있는데, 냄새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포크린 땀샘에서 분비되는 땀이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정진호 교수는 “땀 자체는 원래 냄새가 없지만, 땀이 많이 나면 피부 각질이 분해되고 아포크린 땀샘의 혐기성 세균이 증식하면서 암모니아와 지방산과 같은 부산물을 만들기 때문에 특유한 냄새가 난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 많이 받아도 몸에서 냄새
흔히 암내라 부르는 겨드랑이 액취증이 대표적이다. 사춘기 이후부터 아포크린 땀샘이 커지고 땀의 분비가 많아지면서 시큼한 냄새를 풍긴다. 땀 분비가 증가하는 여름에 특히 심하다. 아포크린 땀샘은 겨드랑이와 외음부에 가장 많은데 눈 주변이나 귀·유방에도 분포돼 있다. 귀지가 꽉 차면 귀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이다.

서양인은 동양인보다 아포크린 땀샘과 피지선이 발달해 체취가 심한 편이다. 뜨거운 물에 온몸을 목까지 푹 담그는 입욕문화가 발달하지 않고 가벼운 샤워만 하는 것도 냄새를 부채질한다. 다행히 서양인은 암내에 익숙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큰 문제를 겪지 않는다.

발도 냄새가 심하다. 발바닥은 손바닥과 더불어 에크린 땀샘이 가장 많은 부위다. 정 교수는 “양말과 신발을 신고 장시간 밀폐된 상태로 있으면 발에서 땀이 난다”며 “피부표면의 세균이 증식해 냄새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냄새를 줄이는 기본은 몸을 자주 씻는 것이다. 아포크린 땀샘이 많은 부위는 더 꼼꼼히 닦는다. 이때 살균작용이 있는 약용제품이 도움이 된다. 씻은 후에는 통풍이 잘 되는 면 옷을 입어 몸을 건조하게 유지한다. 양말과 속옷도 면제품이 좋다.

겨드랑이 냄새는 제모를 하고 파우더를 뿌리면 도움이 된다. 땀 분비를 억제하는 데오도란트 제품을 바르기도 하는데, 성분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겨드랑이 피부에 스며든 일부 성분이 여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유방암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있다. 대신 병원이나 약국에서 항생제 연고를 구해 바를 수 있다. 액취증이 심하다면, 아포크린 땀샘을 제거하는 수술도 있다. 겨드랑이 피부를 1㎝가량 절개해 땀샘을 긁어 없앤다.

나이가 들면 땀샘의 작용이 줄어든다. 땀 때문에 생기는 냄새는 줄어들지만 몸에서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 40세가 넘은 중년의 피부에선 이전에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던 노네날(nonenal)이란 물질이 분비된다. 이것이 노인냄새의 주범이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진호 교수는 “노화하면 피부에서 분비되는 과산화지질과 불포화지방산이 증가한다”며 “이들 물질의 산화적 분해를 통해 노네날이 생성된다”고 했다. 신체활동이 자유롭지 않아 몸을 자주 씻을 수 없다면 옷을 자주 갈아입고, 물수건으로 신체 구석구석을 닦는다. 그냥 닦는 것보다 레몬즙에 적신 수건으로 닦으면 피부에도 좋다.

몸뿐 아니라 입에서도 냄새가 난다. 나이가 들면 침샘도 노화해 침의 분비량이 떨어진다. 입안 세정 기능을 도맡았던 침이 부족하다 보니 세균이 번식해 냄새가 난다. 축농증 등으로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쉴 때도 입안이 말라 냄새가 심하다. 이처럼 입이 마를 때는 물을 자주 마시고, 코밑 인중과 턱 아래쪽을 눌러 침샘을 자극하도록 한다.

젊은 사람이라고 입냄새를 비켜갈 순 없다. 입냄새의 80~90%는 혀의 백태와 치주질환·충치·염증 등 구강 내 문제다. 입 속 세균이 가스 형태의 황화합물을 만들어내면서 썩은 내가 난다. 인후염·편도선염·기관지염에 걸렸거나 생리 중인 여성도 입냄새가 난다. 이때는 양치질을 충분히 하고 혀도 쓸어낸다. 치간 칫솔이나 치실로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이 들어 침 분비 줄면 입냄새 심해져
위 기능이 원활하지 않아 음식물이 위 속에 오래 머물러도 냄새의 원인이 된다. 강남차병원 내과 이화영 교수는 “역류성 식도염으로 위액이나 담즙이 식도로 역류하면 입냄새가 난다”며 “과식을 하거나 지방이 많은 식사를 한 후 식도와 위의 기능이 저하돼 신물이 오르거나 생목이 오르는 느낌이 난다”고 했다. 입냄새를 조장하는 고지방음식, 술·담배·탄산음료·커피와 마늘·양파·파 등을 피하고, 비타민 C와 E가 풍부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한다. 이 교수는 “껌을 씹으면 입냄새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역류성 식도염인 경우 껌의 민트 성분이 식도 하부 괄약근의 기능을 저하시켜 냄새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초콜릿도 마찬가지.

입냄새로 질병을 진단할 수도 있다. 당뇨병 환자 중 혈액이 산성화(산혈증)된 경우에는 내쉬는 숨에서 과일냄새가 난다. 또 간경변증이나 간암처럼 간이 좋지 않으면 달걀이 썩은 듯한 구린내가, 신장질환이 있으면 생선냄새가, 폐질환이 있어도 음식물이 썩는 냄새가 난다.

생식기도 냄새를 풍기는 주범인데 남성보다 여성이 심하다.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강진희 교수는 “더운 날씨로 피지선이 발달하면 염증 가능성이 증가한다”며 “특히 몸에 꼭 끼고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을 경우 더하다”고 말했다. 악취를 풍기는 질 분비물이 있고 냄새가 유난히 많이 난다면 질염이나 성병을 의심할 수 있다. 여성 생식기 감염을 가볍게 생각했다가는 자궁과 나팔관으로 번져 자궁경부염이나 골반염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다만 생식기 냄새를 없애겠다고 세정제를 너무 자주 사용하면 오히려 질 내 정상균이 파괴돼 질염을 유발하므로 주 2회가 적당하다.

이주연 기자 g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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