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은 게 없어 뽀르뚜갈에 진 것, 선수들 추방될까 걱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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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07면

북한의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관심은 매우 컸다. 조선중앙TV는 21일 열린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2차전을 생중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의 생중계 화면이다. [연합뉴스]

코트디부아르와의 3대0 시합을 마지막으로 북한의 2010 남아공 월드컵의 꿈은 끝났다. 그런 북을 남쪽 주민은 안타까워한다. 인터넷엔 ‘간식으로 말린 북어와 물김치를 먹고 저렇게 힘을 낸다’ ‘불쌍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조별예선 참패 북한, 휴대전화로 들어 본 주민들 반응

정작 북에서는 어땠을까. 23~26일 휴대전화로 알아본 북한 주민들의 기대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들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까지 올라갔던 북한이기에 16강까지는 자신 있을 거라고 했다. 한편에선 계속되는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선수들이 잘 먹지 못해 예선(16강)도 넘지 못할 거라는 평도 있었다. 결과는 후자였다.

김정일은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북한에서는 국제 체육경기들은 거의 다 녹화로 보여준다. 북한팀이 이기면 보여주고 지면 안 보여주는 것이 바로 북한이다. 그 때문에 이번 남아공 월드컵 북한 경기를 생중계했다는 것은 그만큼 김정일의 기대와 북한 팀의 결의 또한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일은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팀이 승리하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생중계함으로써 경제난으로 어수선해진 민심을 달래보려 했다고 본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2대1이라는 예상 밖의 성과를 거뒀지만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7대0으로 참패해 의도와는 달리 북한 주민들의 마음에 또 한 번 상처를 준 계기가 됐다. 경기에 나가는 북한 선수들은 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산골로 추방’이라는 심적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임한다. 66년 월드컵에서 비록 8강에 올랐지만 귀국한 후 3개월 이상 이어진 사상투쟁 대논쟁 후 전원이 요덕수용소나 감옥행, 제일 약하게는 탄광이나 임업사업소로 추방된 사실은 이미 다 알려졌을 것이다. 사상논쟁이 벌어진 이유는 북한에 소문 나기로는 ‘미국·영국 정보기관이 붙여준 여자에게 힘이 뺏겨 졌다’는 것이었다.

경기의 승패는 물론 선수들의 기술과 팀워크, 체력이 받침돼야만 승리를 전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축구는 결국 사상전이다. 선수들이 마음 편히 경기를 할 수 없는 심적 부담이 경기에 영향을 미친다. 3패로 끝난 북한팀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알아본다. 이하는 휴대전화 통화를 타이핑으로 옮긴 것이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양강도 대홍단군 주민 조형모(남·48)씨
-축구 봤습니까.
“브라질 녹화중계를 보았습니다. 브라질이 워낙 세니까 이긴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대1로 지긴 했지만 그만하면 잘 찼고, 뛰기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보는 사람들도 땀이 났습니다. 다음 날 농장에 나가니 사람들이 16강에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가졌고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포르투갈전은요.
“뽀르뚜갈전 생중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마을은 전기가 오지 않아 빠떼리(배터리)로 텔레비를 보는 국경 경비대 군관네 집에 가서 보았습니다. 국경 경비대 군인들 여러 명과 농장원 몇 사람이 함께 보았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모두 이기느냐, 지느냐, 비기느냐 서로 술을 걸고 내기를 했는데 비긴다는 비율이 더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센 팀과는 비기고, 약한 팀과 이기면 혹시 16강에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경기를 보는 동안, 전반전을 보고 휴식 시간에 비긴다는 편이 많아졌습니다. 끝나고 술을 내라는 둥…하지만 결과가 너무 한심하니까 말이 안 나갔습니다. 16강은 점수 차이로 올라 못 가지 않습니까. 군인들은 ‘머저리 같은 ××들, 저 정도밖에 못 차냐’ 화를 내고 ‘모두 교화소를 보내라’고 난리였습니다. 농장원들은 군인들 보고 아무리 그래도 경기에서 졌다고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는가고 대들어 싸움이 날 뻔 했습니다.”

-어제 코트디부아르하고 경기했는데 봤나요.
“어제는 경기를 생중계하지 않아 보지 못했습니다.”

▶회령시 주민 김승호(남·32)씨
-이번에 남아공 월드컵 축구경기들을 보았습니까.
“예, 두 경기를 다 보았습니다. 처음에 진행한 브라질 전을 보고 2대1이니까 다음 경기를 비겼으면 했는데 7대0이라니 너무도 기막혔습니다. 그것도 실황(생중계)으로 하고선 무엇을 보여주자는 건지…우리 식구 4명인데, 70이 넘은 할머니까지 혀를 둘렀습니다. 듣는 것과 달리 직접 보니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실황을 하지 말고 신문에나 간단히 내든지….”

-오늘 코트디부아르와 경기했는데 보았는가요.
“모릅니다. 어제는 실황중계를 안 했습니다.”
김씨는 결과를 물어봤는데 3대0이라고 말해주니 실망이 크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온성 주민 최국철(남·45)씨
-포르투갈 경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에구, 우리 축구라는 게 뻔하지. 처음부터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장에서 실황을 한다며 보라고 포치(지시)하기에 행여나 해서 보았습니다. 브라질하고 2대1이었으니까 혹시 비기거나 1대0쯤으로 우리가 이길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후반전에 들어가 연속 골을 먹으니까 보는 사람아 다 짜증이 나더라…역시 우리 축구는 안 된다 말입니다.”

-왜 안 된다는 거지요.
“뭐, 애(선수)들이 먹은 것이 있어야 뛰지. 기력이 달려 후반전에 모두 골을 먹는데…하긴 선수들 잘못도 없습니다. 선수들에게 돈을 줘야 뛰겠는데 돈을 주지 않으니 누가 뛰어. 나 같아도 안 뛰겠습니다. 직장엘 나가니까 걔들 들어오면 모두 산골에 혁명화로 쫓겨 갈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다른 선수들에게도 영향이 클 겁니다.”

-직장에선 뭐래요?
“직장에 함께 다니는 사람 아들이 중학교에서 축구 소조(동아리)를 다니는 모양인데 경기를 보고는 아들에게 당장 축구를 그만두고 장사나 배우라고 말했답니다. 축구 소조에 다닌다고 소조선생이 밤낮으로 돈만 바치라고 한답니다.”

▶신의주 주민 고명철(남·34)씨
-축구 봤습니까.
“난 원래 축구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조선에서 이번 축구경기를 중계해 주면 보고, 안 해주면 몰래 중국 텔레비라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녹화도 아니고 실황중계로 경기를 보여준다고 직장에서 포치하기에 시간 맞춰 보았습니다. 그 시간에는 아마 위(상부)에서 지시가 있었는지 정전도 안 되고 해서 브라질하고 축구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조선 축구팀이 월드컵에 나가는 것은 옛날에 한 번 나가서 8위까지 올라간 전적이 있어서 정말 큰 기대를 가지고 보게 되었습니다.

-브라질과 축구 한 느낌이 어떻습니까.
“세계적으로 제일 강한 팀이라는 브라질과의 경기는 대단했습니다. 내가 막 경기장에 있는 것처럼 가슴이 뛰고, 정작 한 골을 넣었을 때는 ‘역시 우리 조선이 세긴 세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브라질하고 경기점수는 2대1이지만 난 조선이 이긴 거나 같다고 봅니다.”

-포르투갈하고는 어땠습니까.
“뽀루뚜갈하고의 경기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졌다고 보기보다 그날 재수가 따라주지 않았다고 봅니다. 선수들은 정말 죽도록 달렸는데 우리 옆의 사람들은 쟤네들이 경기에서 지고 돌아오면 추방될까봐 그 걱정들만 하고 있습니다. 체육은 체육이고, 충성심이 많다고 해서 이기고 작다고 해서 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선수들이 진짜 추방된다는 말을 들었습니까.
“조선에서는 66년에 국제경기 갔다 온 선수들이 다 잡혀간 다음부터 조선 축구는 100년 퇴보했다고 말을 합니다. 제발 이번 선수들은 혁명화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뽈을 찼는데 졌다고 해서 산골로 쫓아 보내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내 생각뿐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한결같이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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