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첫 한국영화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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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씨클로·아오자이·쌀국수·롱(삿갓 모양의 대나무 모자)·그린 파파야 향기·플래툰, 그리고 디어 헌터.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온 도로를 점령한 베트남 호치민시엔 '한국 바람'이 불고 있었다. 길거리 이발소와 붉은색 깃발이 인상적인 호치민시의 가장 중심가엔 한국 포스코에서 지은 다이아몬드 플라자가 서 있다.

그 건물 13층에서 한국영화 전용관이 지난 주 문을 열었다. 김남주와 김희선 그리고 이나영의 대형 브로마이드 광고 사진이 호치민시 번화가인 파리공원 앞 다이아몬드 플라자 광고용 쇼 윈도 안에서 사이 좋게 웃고 있었다.

김남주와 이나영을 모델로 내세운 한국산 화장품과 한국 전자제품의 매장이 고급 백화점에서 가장 붐비는 길목에 떡 자리잡고 있다. 백화점·미술학원이라고 쓴 한글을 채 지우지도 않은 '한국 중고차'들이 씩씩하게 섭씨 38도를 넘는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달린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의 삽입곡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가 오토바이 매연 속에서 흘러나오는 듯하다. 한국의 1960~70년대 풍경처럼 낯익다.

모두들 일손을 놓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의 프라임 시간대에 베트남 방송사는 한국 드라마를 방영한다. '의가형제'다. 장동건(베트남 사람들은 장동군이라 한다)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에 닿을 듯하고, '보고 또 보고' '걸어서 하늘까지''모래시계' 같은 한국 드라마가 베트남 안방을 점령했다.

문득 '제5 전선''초원의 집''6백만불의 사나이' 등의 미국 드라마에 빠졌던 한국의 옛날 모습이 떠오른다.

베트남 남자들보다 '엄청 잘 생기고 키 큰' 한국 배우 김승우의 사인회가 열린 날 상기된 모습의 그를 만났다. "사인을 한 뒤 제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저보고 최진실이래요."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다. 드라마 '추억'에서 최진실과 공연했기 때문에 잠시 혼동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베트남 여자들은 '김승우'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눈에선 빛이 났다.

안재욱의 '포에버'를 극장개관 기념행사에서 베트남 가수가 불렀다. 2절은 우리말로 불렀다. 코요테의 '순정'은 국민 가요 같았다.

백화점과 나이트클럽에선 이정현의 '와'가 귓전을 때린다.

우리는 이런 '한류'에 들뜨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공짜 영화표를 받으려고 한국영화 전용관 앞에서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던 베트남 사람들. 개관식에 참석한다고 홍보한 배우 중 상당 수가 부도수표를 낸 '한국 영화관 개관식과 사인회'는 아무래도 씁쓸하다.

한국 열풍이 이러다가 '헛바람'이 되고 '냉풍'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러이 한국 넙짜이(한국 사람 잘 생겼다)." 베트남 사람들에게서 두고두고 이 말을 들으려면 사심이 없어야 한다. 사랑은 받는 만큼 지켜야 한다.

베트남에서.

MBC '섹션 TV 연예통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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