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국회 탓 앞서 '정책 엇박자' 반성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힘들여 법안을 만들어 내놓으면 뭐합니까? 국회에서 저렇게 발목을 잡고 있으니."

20일 총리실의 한 고위 공무원은 거듭되는 국회 파행사태를 거론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민생이니 뭐니 말만 하지 정작 필요한 법은 처리도 안 하고 엉뚱한 짓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제 관련 부처의 한 공무원은 "17대 국회가 구성된 뒤 정치권이 한 일이 도대체 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정기국회에 이어 임시국회까지 파행을 면치 못하자 요즘 정부 곳곳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발목 잡는 국회 때문에 일 못해 먹겠다는 소리다. 예산과 법안 모두가 여의도에 묶인 탓이다. 당장 내년도 나라살림 계획(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자칫 지난해 예산을 준용해서 집행해야 하는 사태도 우려된다. 이 경우 신규사업은 단 하나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이제는 시간이 너무 늦어져 예산안이 처리되더라도 예정대로 예산 집행을 하기 어렵다는 게 일선 공무원들의 푸념이다.

법안 처리도 문제다. 정부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꼭 처리해야 할 법안으로 57건을 꼽고 있다. 기금관리법.민간투자법.국민연금법 등 이른바 '한국형 뉴딜' 관련 3법을 비롯, 경제자유구역법.사립학교법.채무자회생법.파견근로자보호법 등 대부분이 굵직한 사안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지난 13일 이해찬 총리와 이부영 당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협의를 열고 이들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다짐했다. 그러나 지금껏 아무런 진척이 없다.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은 코미디에 가깝다. 한 공무원은 "대통령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라크를 방문해 자이툰부대 장병들을 포옹하는 등 온몸으로 연장 동의 의지를 보였는데 정작 여당에서 반대가 터져나와 처리를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정부도 정치권의 잘못만 들먹이기에는 낯 뜨거운 구석이 없지 않다. 최근 1가구 3주택 양도세 중과세를 놓고 벌어진 청와대와 재경부 간 엇박자가 대표적 사례다. 정부 내부의 갈등을 여과 없이 국민 앞에 드러내 가뜩이나 떨어진 정부의 대국민 신뢰를 또다시 추락시켰다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남의 탓을 하기에 앞서 겸허한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갑생 정책기획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