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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제2부 薔薇戰爭제3장龍虎相搏:진퇴유곡에 빠진 김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어느 날 갑자기 김양의 아내인 사보부인이 딸을 데리고 백률사에 나타난 것이었다. 김양으로서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뜻밖의 일이었다. 물론 사보부인은 겉으로는 관음상 앞에서 불공을 드린다는 핑계로 행차하였으나 실제로는 절에 은둔해 있는 남편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김양은 아내와 딸을 만나자 크게 놀랐다. 어떻게 해서 승복을 입고 중 아닌 중노릇을 하면서 숨어 있는 자신의 존재를 아내가 눈치챘을까 하는 충격 때문이었다.

아내가 자신의 은신처를 알고 있다면 김명을 비롯한 불구대천의 원수들도 자신이 숨어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 것인가.

그제서야 김양은 자신이 염장에게 업혀 도망칠 무렵 장인 이홍의 군사에게 발각되어 현장에서 참형에 처해질 위험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아내로부터 전해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홍은 알고 있었다.

김양이 도망칠 곳이야 북산인 금강산 일대에 불과할 것임을. 김양이 죽어 시체가 된다 하더라도 금강산에 묻힐 것이요, 다행히 살아 목숨을 건진다 해도 금강산에 있는 백률사 일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홍은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백률사의 동정을 살피다가 마침내 사위 김양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수레에 태워 사보부인과 딸을 보냈던 것이다.

"아버님께오서는 서방님께오서 더 이상 숨어 계시지 마시옵고,한시 빨리 조정으로 들어오시라고 말씀하셨나이다."

한적히 떨어진 암자에서 사보부인은 김양에게 말하였다. 김양은 잘 알고 있었다. 장인 이홍은 김균정을 죽이고 제융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데 일등공신으로 시중위에 올라있음을. 따라서 이홍이 권력서열의 제2인자인 시중위에 있는 한 숨어 있던 백률사에서 벗어나 이홍에게 의탁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음을.

"아버님께오서는 서방님께오서 조정에 들어오시면 전과는 묻지 아니하옵고 서로 힘을 합쳐서 경국의 대업을 도모하시자고 하셨습니다."

경국의 대업.

나라를 다스리는 큰 사업. 김양은 아내를 시켜 전한 장인 이홍의 야심이 무엇임을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다. 장인이 말하는 경국의 대업은 다시 왕위를 찬탈하자는 유혹이 아닐 것인가.

그날 밤.

김양은 모처럼 아내와 딸과 더불어 외딴 암자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김양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빙장 이홍은 자신의 딸이자 김양의 부인인 사보를 시켜 최후의 통첩을 해온 것이다.

우리는 네가 숨어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이 통첩을 받아들인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지만 만약 이 통첩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면 그땐 군사를 풀어 백률사를 포위하고 잡아들이겠다는 최후의 선택을 물어온 것이었다.

김양은 심란하여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내의 말을 받아들여 이홍에게 투항한다면 당장에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김명에게 척살되어 버려질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날이 밝기 전에 백률사를 도망쳐 또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방법뿐인 것이다.

자신이 도망갈 곳은 오직 하나. 그곳은 김균정의 아들인 김우징이 망명해 있는 청해진뿐이다. 그러나 또한 김양은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김균정과는 달리 김우징은 자신을 별로 좋아하고 있지 않음을. 김우징은 이 모든 비극이 김양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의심이 많은 김우징은 김양이 어떻게 그 혼란의 와중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았을까 하고 의심할 것이다.

더구나 김양의 빙장이 반적 이홍이라는 사실을 김우징은 정확히 알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설혹 김양이 무사히 청해진까지 도착해 몸을 의탁한다고 하더라도 무슨 음모를 갖고 온 첩자라고 생각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진퇴유곡(進退維谷).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갈 수도 없는 궁지. 김양은 순간 자신이 바로 그 궁지에 빠지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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