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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칼럼] 전립선염 발병 원인 알고보니 성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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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택 한의사

회사원 H씨(29)는 얼마 전에 만성전립선염 진단을 받았다. 지난 반 년 정도 회음부가 당기고 소변 볼 때 작열감이 느껴지는 등의 증상이 점점 심해져 비뇨기과에 내원하여 검사를 받았더니 전립선의 염증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또 한 가지 H씨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세균 검사 상으로 성병균이 검출되었다는 점이었다. 성관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감염될 확률이 거의 없는 균이었다. 사실 1년 전 쯤에 면식이 없는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고 나서 요도가 따갑고 간지러운 증상이 보름 정도 있었는데, 그 후에는 저절로 사라졌기 때문에 큰 걱정을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감염의 후유증으로 전립선염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처음에 너무 안일하게 대응해서 병을 키운 격이 된 것에 후회하면서도, 단지 한 번의 실수로 난치병이라는 만성전립선염에 시달리게 된 것에는 억울한 느낌이 드는 H씨였다.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는 질환, 즉 성병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임상적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급성 요도염이다. 세균, 바이러스, 원충과 진균 등이 모두 원인이 될 수 있으며 흔하게 발견되는 것은 임질, 클라미디어, 유레아플라즈마, 마이코플라즈마, 헤르페스, 트리코모나스, 칸디다 등이다. 일반적으로 배뇨통, 요도의 작열감과 소양감, 요도의 화농성 혹은 점액성 분비물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나 이는 원인균마다 발현 양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논하기는 어렵다. 특히 잠복기가 길거나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보균 상태만 유지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성전립선염은 남성에게 있어 부고환염과 함께 급성 요도염의 대표적인 후유증으로 알려져있다. 성병균에 의한 급성 요도염에 반복적으로 감염되거나, 감염되었을 때 적절한 치료가 이루워지지 않을 경우 전립선염으로 이환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요도와 전립선이 조직학적으로 서로 매우 인접한 장기라는 점, 또한 전립선이 요도로부터 상부 장기로 이어지는 길 중간에 위치한 면역학적 관문이라는 점 때문에 요도염과 전립선염은 밀접한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보통은 요도염에서 전립선염으로 이환되지만, 거꾸로 전립선의 염증이 지속되면서 만성 요도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성병균에 의한 감염성 요도염이 만성전립선염으로 이환된 초기에는 전립선의 염증 역시 세균성인 경우가 많다. 이때에는 항생제 요법을 통해 증상의 호전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항생제 치료 후에도 계속 재발하는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비세균성으로 전환되는 경향이 있다. 음주, 흡연, 스트레스, 과로 등의 요인으로 세균의 활동 없이도 비특이성, 허혈성 염증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시점부터는 항생제 요법이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세균이라는 뚜렷한 적이 없어도 이미 오랜 전쟁으로 초토화된 조직은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아도 문제를 일으킨다. 이미 금이 간 벽은 약간의 충격만으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때의 염증성 변화를 개선하는 길은 이미 해결된 미생물학적 요인에 집중하는 것보다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한의학에서도 성관계를 경로로 하여 생식 관련 조직에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매독을 지칭하는 양매창(楊梅瘡)의 경우 그 원인이 성관계를 통한 전염이라는 점을, 급성 요도염을 의미하는 근산(筋疝) 역시 과도한 성관계가 원인이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지나친 성관계가 신정(腎精)을 고갈시켜 허약한 상태를 만들기 때문에 보해야 된다는 일반적인 한의학적 논리와 반대로, 근산에서는 보하는 약 대신 청열(淸熱)하는 약을 사용해야 낫는다고 명시하고 있어 소모성 허약증(虛證)이 아니라 성관계를 통한 감염성 염증(實證)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요도와 전립선은 자체적인 회복 능력이 강한 조직이 아니다. 감염을 통해 한 두 번의 큰 염증이 훑고 지나가면, 그로 인한 조직 손상이 제대로 회복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의 휴식과 관리가 필요하다. 손상된 조직이 채 회복되기 전에 반복적으로 염증이 생긴다면 결국에는 외부적인 감염 없이도 지속적으로 염증이 재발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한 두 번의 성병이 만성전립선염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다.

전립선염으로 이환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하게 관리하고 예방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이미 그 단계를 지나 전립선의 염증이 만성화된 경우 효과적인 조직손상의 회복 과정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한의학적 치료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손상된 점막을 재생하고 울혈을 제거하여 정상적인 혈류를 되돌려놓아 허혈성 염증의 빌미를 제거해야 비로소 완전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성병의 과거력을 가지고 있는 만성전립선염 환자들이라면, 단순히 후회하고 억울해하기보다는 정말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해결책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의사 이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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