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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현미경도 3D 동영상으로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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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전자현미경은 극히 미세한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인류에 선사했다. 전통적 광학현미경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바이러스뿐 아니라 물질의 최소입자인 원자의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했다. 그런 전자현미경이 초정밀 레이저와 만나 3D(3차원) 동영상까지 찍을 수 있게 됐다.

전자현미경의 새 차원을 열게 된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의 한국인 과학자 권오훈(36·사진) 박사가 이뤄낸 쾌거다. 그는 전자현미경에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레이저를 연결한 단층촬영 기법을 활용해 관찰 대상의 움직임을 3D 동영상으로 초고속 촬영하는 기술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의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25일자에 발표된다. 공동 연구자는 1999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칼텍의 아메드 즈웨일 박사다.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해 초고속으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관찰하는 분광학적 기술로 노벨상을 받았다.

전자현미경은 극미세 세계를 관찰하기 위해 인류가 창조한 가장 뛰어난 기기다. 그러나 생물의 경우 냉동으로 얼린 것을 관찰할 수밖에 없고 동영상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컴퓨터의 발달로 자기공명영상(MRI)처럼 단층촬영을 한 뒤 입체 영상을 만드는 수준까지는 가능해졌다.

권 박사는 즈웨일 박사가 화학반응 연구에 응용한 초고속레이저인 펨토초 레이저에 주목했다. 이 레이저의 펄스 폭은 1000조분의 1초로 매우 짧다. 이를 기존 전자현미경에 연결했다. 전자현미경에는 펨토초 레이저를 두 갈래로 집어 넣었다. 한 줄기는 순간적으로 시료에 쪼여, 시료가 열을 받도록 했다.

즉, 에너지를 주입해 시료가 움직이도록 한 것이다. 또 한 갈래의 레이저는 전자현미경의 셔터를 여닫는 스위치 역할을 하도록 했다. 즉, 1000조분의 1초마다 전자현미경의 셔터 버튼을 작동하게 해 시료의 움직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전자현미경은 전자를 시료에 쪼여 반사되거나 투과되는 전자를 기록함으로써 시료의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전자의 방출을 레이저가 조절한다.

탄소나노튜브가 시간에 따라 변형되는 모습을 찍은 모습. 각각 다른 색은 그 시간대의 위치이며, 화살표는 움직인 방향이다.

권 박사는 이렇게 해 세계 처음으로 탄소나노튜브가 에너지를 받으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3D 동영상으로 찍는 데 성공했다. 1000조분의 1초마다 전자현미경의 셔터를 눌러 시료의 동영상을 찍은 것이다. 레이저 과학자들이 X선 레이저로 이런 동영상을 찍기 위해 기술을 개발 중이지만 아직 기초연구에 머물러 있다.

자연계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날 때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 사이의 결합이 끊어지거나 이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펨토 초 내외다. 이번 기술을 적용하면 이와 같이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자연계 물질의 변화를 3D 동영상으로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3D 동영상 전자현미경의 개발은 과학 발전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간접적으로 짐작만 하던 물질의 변화상태를 눈으로 직접 보면서 관찰하니 얼마나 많은 과학적 사실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겠는가. 가령 나노(10억분의 1m) 크기의 극히 작은 기기가 작동할 때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밖으로 전달되는 전기 신호 등에 의존해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술로는 초고속 3D 동영상으로 낱낱이 살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얼음에 얼리거나 용액 속에 풀어 놓은 단백질의 구조 변화도 장차 촬영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는 지금까지 인류가 알 수 없었던 단백질의 구조 변화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권 박사는 “기존 전자현미경을 약간만 개조하면 입체 동영상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실용화는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화학과에서 학사부터 박사학위까지 한 토종 과학자다. 칼텍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포스트닥)을 거쳐 현재는 연구학자로 재직 중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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