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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노조 합심 경인방송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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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경인방송은 지금 전국 방송사 가운데 유일하게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경인방송 재무구조 개선계획과 대주주의 투자 의지가 불투명하다는 방송위의 지적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주주는 노조가 이른바 '공익적 민영방송'을 주장하며 불법 파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방송법에 따라 방송사는 3년마다 재허가 추천을 받아 방송하도록 돼 있다. 방송위원회는 21일께 경인방송에 대한 재허가 추천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경인방송이 재허가 추천을 받지 못한다면 내년부터는 법적으로 송출할 수 없기 때문에 방송사가 문을 닫는 우리나라 방송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난다. 이런 까닭에 방송계 전체가 방송위의 재허가 결정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경인방송노조는 한 달 넘게 불법 파업을 계속해오며 단체협약 대상이 아닌 이른바'공익적 민영방송'을 주장하고 있다. '공민방'의 개념은 소유구조 개편과 사장추천공모제를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소유구조 개편이란 비영리 공익재단을 만들어 방송사 운영에 간여하고 대주주의 전횡을 막겠다는 것이다. 얼핏 들어보면 그럴 듯한 주장이다.

방송법상 대주주는 30% 지분을 초과하면 안 되기 때문에 경인방송의 대주주인 동양제철화학은 30%를 초과하는 주식(우선주로 200여만주)을 우리사주조합에 염가로 매각할 계획이다. 이는 사원들의 애사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노조는 초과 지분뿐 아니라 우선주 340만주 전량을 우리사주조합이 염가로 넘겨받고, 또 대주주로부터 50억원 정도를 출연받아 이를 토대로 비영리 공익재단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주주로부터 주식과 자금을 받아 재단을 만들어 그 뒤 이 재단으로 대주주를 견제하겠다는 논리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한 주식회사의 노조가 자기회사의 소유구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방송개혁 운동이 이런 방향으로 전개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사장추천공모제의 논리도 문제가 있다. 사원대표.언론인 대표.대주주 추천인 등 9명으로 구성된 사장공모추천위원회를 통해 대표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이사회는 추천된 자를 대표이사로 선임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상법에 따르면 대표이사 선임은 주주총회와 이사회의 고유권한이며, 대표이사 선임문제를 노조와 협의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대주주 역시 분명한 비전을 갖고 과감하게 투자해야 할 책임이 있다. 방송이라는 소프트웨어 산업에는 많은 선투자가 필요하다. 경인방송은 분명히 수도권 민방으로 도약할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1997년 10월 개국 이후 지금까지 '박찬호 미국 프로야구 중계'나 '황제의 딸'같은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성인가요 베스트30'등의 몇 개 프로그램은 뜨거운 성원을 받고 있다.

내년부터는 서울지역에서도 케이블 TV를 통해 경인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가능성이 있는 민영방송이 대주주와 노조의 충돌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 대주주와 경영진.노조 3자 모두가 합심해 방송을 계속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박광순 경인방송 대표이사 직무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