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죽음의 여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인도는 신(神)들의 나라다. 대부분 힌두교도인 8억 인도인들은 세상의 온갖 신을 다 모시고 산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빌어야 할 소원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신에게 기도한다. 이해하려 엄두를 내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종교, 그토록 많은 신 가운데서 이방인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존재는 여신(神) 칼리(Kali)다. 붉은 혓바닥을 늘어뜨린 채 조각난 인간의 육신을 두르고 피를 받는 칼리의 모습 자체도 생경하지만, 그같은 '죽음의 여신'에게 생명의 축복을 받고자 어린 아이를 눕혀놓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방인을 전율케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칼리를 알면 그같은 전율은 다소 완화될 수 있다. 칼리는 힌두교의 3대 주신(主神) 가운데 하나인 시바(Siva)의 아내다. 힌두적 세계관을 지배하는 주신은 시바 외에 브라흐마(Brahma)와 비슈누(Visnu). 인도의 많은 신들은 나름대로 세계를 나눠서 지배한다. 힌두식 세계관은 한마디로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을 거듭하는 윤회(廻)다. 이같은 세계관에 따라 브라흐마는 '창조', 비슈누는 '유지', 시바는 '파괴'를 각각 나눠 맡았다.

이방인들을 더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인도의 신들이 장소·역할에 따라 변신한다는 점이다. 시바는 인도 내에서 1천여개의 별칭으로 불린다. 다신교였던 고대 인도사회에 난립했던 신들이 수천년에 걸쳐 주요 신들의 화신(化身·아바타)으로 통합·정리됐기 때문이다. 시바의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과 역할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칼리는 지역적으로 볼 때 인도 동북부 벵골만 지역에서 숭배되는 여신, 갠지스강의 하류 캘커타의 수호여신이다. 역할면에선 죽음과 공포의 상징이다.

그런데 힌두적 세계관에선 상식이 뒤집어진다. 윤회사상에 따라 죽음은 곧 생성이기에 칼리는 생명과 양육의 신이 될 수 있다. 혐오스런 모습은 악(惡)을 물리치는 '벽사(?邪)'용이기에 칼리는 수호의 신이기도 하다. 죽음의 여신이 곧 생명과 수호의 여신이 되는 것이 바로 힌두의 정신세계다. 지난 19일 동반자살한 30대 남자가 함께 투신한 10대 소녀 두 명에게 가르친 죽음의 유혹이 '칼리 숭배'였다고 한다. 칼리의 겉모습만 보고 그 속에 담긴 힌두의 정신세계를 알지 못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힌두에서도 어리석음은 죄악이다.

오병상 문화부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