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억이 1,200억 일진 투자 대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1백20억원이 1천2백억원으로 불어났다.

국내 중견그룹 일진이 10여년간 키운 해외 바이오벤처를 팔면서 남긴 결산표다.일진은 미국 보스턴 소재 자회사 이텍스(ETEX)를 순차적 인수·합병(M&A) 방식으로 세계적 의료기기 업체인 메드트로닉에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23일 발표했다. 매각대금은 약 1억8천4백만달러(2천4백40억원).

이텍스에 대해 ㈜일진 24%,일진소재 26% 등 모두 5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일진그룹은 약 9천2백만달러(약 1천2백20억원)를 받게 된다. 일진은 이미 4%의 지분을 양도하고 93억원의 매각대금을 받았으며, 나머지 46%의 지분은 향후 2~3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넘기게 된다. 이번 매각은 해외벤처 투자에서 우리기업이 거둔 사실상의 첫 성공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0여년을 공들인 결과=일진그룹이 이텍스에 투자를 결정한 것은 '벤처'라는 말이 생소한 1990년.당시 이텍스의 설립자인 재미 과학자 이도석(미국명 듀크 리·하버드대 생체재료학 교수)사장은 회사를 만들어 놓고 투자자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었다.'뼈 대체물질'이라는 사업거리를 갖고 국내 대기업과 의료업체를 설득하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일진그룹.

평소 소재물질에 관심이 있었던 허진규 회장은 이박사의 설명을 듣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50%의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인수했다. 설립 후 몇년간 성과없이 '밑빠진 독'처럼 돈이 들어가자 그룹 내에서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1996년 드디어 'α-BSM'이라는 신물질이 개발되면서 불만은 환호로 바뀌었다. 이 물질은 성형·두개골 치료용으로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고 유럽에서는 뼈와 관련한 포괄적 치료제로 인정받아 유럽규격(CE)을 얻으면서 메드트로닉의 관심을 끌게 됐다.

◇꿩먹고 알먹고=일진은 이텍스를 팔았지만 바이오 산업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메드트로닉에 이텍스를 넘기기 전 항암제·백신·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담당할 자회사 '시드니 온콜로지'사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뒀다. 말하자면 이텍스에서 투자이익을 거두고도 그동안의 바이오벤처 경영경험을 살릴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일진은 이번 매각대금 일부를 시드니 온 콜로지와 국내 제약 자회사인 한국이텍스의 생명공학 연구분야에 투자하는 한편 나머지는 ㈜일진과 일진소재 산업의 투자자산 수익으로 귀속시키기로 했다.

박승권 이텍스 부사장은 "이번 M&A에도 불구하고 바이오산업에 대한 그룹 차원의 관심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드트로닉은 어떤 회사=메드트로닉은 뉴욕 증시에 상장된 심장 및 척추분야 세계 1위 의료기기 업체. 2000년 매출 55억달러에 이르는 대형 업체다.

이현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