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쇼의 명수 고이즈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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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고이즈미 준치이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는 과거에 돌출행동을 많이 해 '헨진(變人·이상한 사람)'이라고 불렸다. 지난 21일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전격 참배한 그에게는 '깜짝쇼의 명수'라는 별명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지난해 4월 자민당 내 모리 요시로(森喜朗)전 총리 파벌의 회장을 맡고 있던 고이즈미는 자민당 총재선거 직전 갑자기 파벌탈퇴를 선언한 후 '탈파벌 정치·자민당 개혁'을 내세워 선거구도를 '개혁 대 반개혁'으로 몰고갔다. 그 결과 최대파벌 보스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太郞)전 총리를 누르고 당선했다. 지난해 5월에는 일본 정부가 한센병(문둥병)환자를 격리 수용한 것이 잘못됐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여론은 판결을 환영했지만 정부는 규정상 대법원에 항소해야 할 처지였다. 고이즈미는 독단적으로 항소 포기를 결정하고, 배상 범위를 법원 판결보다 확대해 국민지지도를 높였다.

또 한번의 깜짝쇼는 지난해 8월 13일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였다. 고이즈미는 총재선거 때부터 "8월 15일에 참배하겠다"고 공언해왔다.나라 안팎에서 반발이 일자 그는 이틀 앞당겨 전격적으로 참배를 단행했다.

올해도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 여부나 시기가 관심거리였다. 1985년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당시 총리가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가 주변국의 거센 항의를 받고 다음해부터 중단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주변국의 반대'와 '국내 보수세력의 참배 압력'이란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 사전 참배라는 편법을 동원했다.

깜짝쇼가 잦으면 신뢰도가 떨어진다. 고이즈미는 최근 "야스쿠니 신사의 봄 대제(大祭)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해놓고는 대제 첫날 참배함으로써 주변국과 일본 국민을 기만했다. 시기가 4월이라 해서 '태평양전쟁 A급 전범에게 머리를 숙였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 내에서는 "고이즈미가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둔 한국은 크게 반발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립묘지 설치안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미룬 채 '요건 몰랐지'식의 전범 참배를 되풀이해서야 '한·일 우호'는 입에 발린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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