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수치" 유럽 각국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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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1일 실시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파인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 당수가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키자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 각국이 충격과 경악 속에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전역에선 수십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프랑스인인 것이 수치스럽다''민주주의의 재앙'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반(反)르펜 시위를 벌였다. 파리 시민 1만여명은 바스티유 광장에서 "우리 모두는 이민의 자손이다" "파시스트 르펜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집회를 열었고 콩코르드 광장에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최루탄이 발사되는 가운데 22일 새벽까지 시위가 이어졌다. 프랑스 내 아랍·유대계 주민들은 "르펜의 외국인 혐오증에 맞서 공화주의 정신을 되살리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 공화국의 가치가 위기에 처했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노엘 마메르 녹색당 당수는 "좌파가 기층민의 요구에 답하지 못한 결과"라며 "모든 좌파의 단결"을 호소했다.

닐 키녹 유럽연합(EU) 집행위 부위원장은 르펜의 돌풍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며 "유럽 정치동맹에 더러운 큰 바위를 던진 꼴"이라고 개탄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프랑스인들이 극단주의를 몰아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엘리에 이샤이 이스라엘 부총리는 프랑스 내 유대인들에게 "짐을 꾸려 이스라엘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한편 미국 국무부의 한 관리는 "우리는 르펜 당수에 관해 어떠한 구체적 논평도 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프랑스의 정치를 관심있게 지켜보겠지만 선거는 내정 문제"라고 말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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