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미의 한 지붕 두 종교] 5. 바하이 믿는 황선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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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황선희(右)씨 집에는 성모 마리아와 바하올라가 공존한다. 딸과 엄마는 종교의 근본은 하나라고 믿는다.

경춘선 기차를 타고 내린 가평역. 한적한 동네를 찾아 황선희씨 가족을 만났다. 엄마와 딸, 둘 뿐인데 서로 종교가 다르다. 엄마는 가톨릭 신자고, 딸은 바하이 교우다.

호주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딸 황선희씨는 대도시가 싫어 넉 달 전 가평에 내려와 학습지 선생님을 하고 있다. 1997년 바하이로 개종한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와 같이 성당에 다녔고, 견진성사까지 받았던 가톨릭 신자였다. 딸은 더 이상 성당에 다니지 않지만 매주 일요일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는 엄마를 모시고 성당에 나간다.

황씨가 바하이 교우가 된 인연은 특별하다. 서울 수도여고에 다닐 때 후암동 집에서 학교까지 걷는 길에 매일 본 게 하얀 바하이 본부 건물이었다. 그 앞을 10년 넘게 다니며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모든 종교는 하나다" 라는 대형 브로마이드를 유심히 쳐다보곤 했으나 문을 두드리진 않았다. 이후 후암동을 떠나 전화번호부를 뒤지다가 우연히 '바하이'를 다시 만났고 바로 종교를 바꿨다.

엄마는 마음을 졸여야 했다. 딸이 하루아침에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바하이로 개종했으니….

"처음엔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았나 하고 걱정했어요. 제가 연극을 좋아해 딸이 가끔 연극을 보여주는데 극장에 가면 꼭 바하이 교우를 만나게 됐어요. 사람을 직접 알고 보니 안심이 되더군요."

딸은 엄마에게 바하이를 알리려고 머리를 썼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연극표를 샀고, 그 자리에 바하이 교우를 초대했다. 함께하는 자리가 잦아지면서 엄마도 교우들과 가까워졌고, 바하이의 가르침도 이해하게 됐다.

개종을 궁금해 하자 황씨가 '하느님에 대해 아는 것'을 주제로 설명했다.

"가톨릭 배경이 없었다면 바하이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바하이가 되고 가톨릭을 바라보니 더 잘 보이고 성경도 잘 읽힙니다. 어렸을 때 어렵기만 했던 철학책이 커서 읽었을 때 이해가 되는 것처럼요. 성경 구절구절이 되살아나는데 특히 사랑과 용서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어요. 가톨릭에선 초등학교 운동장의 푸근함을, 바하이에선 대학교 교정의 탐구심을 느낍니다. 영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성경과 코란, 베다까지 섭렵하게 됐어요."

그녀가 믿는 바하이는 어떤 종교일까. 160년 전 태어난 젊은 종교인 바하이는 현시자 바하올라의 말씀이 모두 하느님의 계시라고 믿는다. 바하올라는 오직 한 분뿐인 하느님을 가르켰다. 유일신의 이름으로 모든 종교는 통합된다는 것. 바하이 교우는 시대에 따라 그 가르침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모든 종교는 하느님 한 분으로 통합되고, 인류도 하나의 공동체로 융합된다고 믿는다.

한국에 바하이 신앙이 전래한 것은 1921년. 한 미국인 여성에 의해 서울에서 처음 집회가 열렸고, 80여년이 지난 지금 전국에 3500명의 교우가 있으며, 작은 공동체 예배모임도 10곳에 이른다.

엄마 방에는 성스러운 작은 제단이 차려져 있다. 성모 마리아와 십자가가 있고, 옆에 있는 딸의 서재엔 바하이 성지에서 가져온 성물과 바하이 인물 사진이 놓여 있다. 이 모습을 자신의 종교만 강요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 마음을 읽은 듯 황씨가 한마디 건넸다.

"모든 종교는 하나의 소리입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160년 전의 바하올라도 가르침의 단어만 다를 뿐 똑같은 말씀이었어요. 모든 성인은 사랑과 자비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난 사랑만 하고 융합은 안 할래'라고 하면 곤란하죠. 전 틱낫한 스님을 존경해요. 직접 뵙고 질문도 드렸지요. 무슨 색깔의 옷을 입어도 몸은 하나인 것처럼 무슨 종교를 믿어도 근본은 하나입니다. 바하올라는 '세계는 한 국가이며 인류는 그 국민이다'라고 말씀하셨죠."

성모 마리아와 바하올라가 공존하는 공간. 집안에 따스함이 넘치는 것은 그 누구의 하느님이든 이 모녀에게 큰 축복을 내린 때문이 아닐까.

김나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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