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이 잎 못 갉아먹게 소화방해 물질 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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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식물도 지능을 갖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당연히 "노(NO)"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영국 에든버러대 분자생물학 연구소의 앤서니 트루에이버스 박사는 최근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많은 식물학자는 식물도 지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반인의 생각을 깨뜨리는 사례를 소개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실삼새 무리의 덩굴 식물. 거머리가 사람의 피를 빨듯 다른 나무를 칭칭 감은 뒤 침을 꽂아 영양분을 빨아먹는 놈이다. 이 식물은 나무에 덩굴 줄기를 대고 제물로 삼기에 적당한지를 살피고, 적당하지 않을 경우 한시간 안에 철수해 다른 먹이감을 찾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가 죽었거나 너무 작아 빨아먹을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면 포기하고 다른 대상을 물색한다. 지능을 가진 동물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서울대 이일하(생명과학부) 교수는 "많은 식물은 곤충이나 애벌레가 잎을 갉아 먹으면 일종의 보복을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곤충의 피해를 받으면 소화를 방해하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때문에 나뭇잎을 갉아먹은 곤충은 소화불량에 걸린다는 것이다. 또한 곤충이 잎을 물어 뜯으면 메틸 자스모네이트라는 물질이 공기 중으로 퍼지는데, 이는 '경계경보'로 작용해 이웃한 같은 식물도 소화방해 물질을 잎으로 보내게 만든다.

곤충이나 애벌레가 침입하면 강도가 들었다고 경찰을 부르는 식물도 있다. 콩과의 몇몇 식물은 애벌레가 이파리를 뜯어 먹으면 테르핀 계의 화학 물질을 내뿜는다. 이는 말벌에 '여기 먹이가 있다'는 신호로 작용해 애벌레를 잡아가도록 한다.

시치미 뚝 떼고 꿀벌을 속이는 난초도 있다. 학명이 '발리아 로베르티아나'라는 난초는 꽃에 꿀이 없다. 하지만 색과 모양만 보고 꽃을 찾아드는 꿀벌은 이 꽃에 앉아서는 본능에 따라 꿀을 찾는다. 없는 꿀을 한참 찾다 보면 온몸에 꽃가루 뒤범벅이 되게 마련. 결국 꽃가루받이에 훨씬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학자들은 이 난초가 번식에 유리한 쪽을 택해 진화하는 과정에서 꿀샘이 없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갖가지 독특한 생존 전략을 가진 식물이지만 과연 이를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이일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똑똑한 사람은 여러 가지 상황에 잘 대처한다. 비록 식물이 움직이지는 못한다 해도 벌레의 침입 등 각종 상황과 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만큼 일종의 지능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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